[분수대] DJ의 세레나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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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모차르트의 오페라 '돈 조반니' 제2막에서 주인공인 조반니는 사랑하는 여인 엘비라의 집 창 밖에서 세레나데를 부른다. 만돌린 반주에 맞춰 부르는 조반니의 '나의 아름다운 보배여' 의 달콤한 선율에 엘비라의 마음은 흔들리고 만다. 어둠이 깔린 저녁 창 밖에서 들려오는 사랑에 빠진 남자의 애절한 노래에 귀 막고 가슴을 닫을 여자가 몇이나 될까.

이탈리아어로 저녁을 뜻하는 '세라(sera)' 가 어원인 세레나데는 달 밝은 밤 연인의 창 밖에서 간단한 악기 반주에 맞춰 부르는 사랑의 노래다. 줄리엣의 집 앞에서 로미오는 "창문을 열어주오. 내 사랑하는 줄리엣" 을 노래했다. 모차르트의 '아이네 클라이네 나흐트 무지크(小夜曲)' 에서 보듯 세레나데가 밝고 경쾌한 기악곡 형식으로 넘어간 18세기 이후에도 세레나데는 사랑을 구하는 남자의 성악곡으로 여전히 애창됐다.

"밤의 어둠을 빠져나온 내 노래는 남 몰래 그대를 부르네/내곁으로 내려오라…우리 행복 나눌 그날을 기다리며/가슴 터질 듯 그대를 기다리고 있다오. " 슈베르트의 가곡집 '백조의 노래' 가운데 네번째 곡은 성악곡으로서 세레나데의 진수를 보여준다. 그 뿐인가. 토셀리와 토스티의 세레나데가 있고, 구노의 '파우스트' 제4막에서 메피스토펠레스가 부르는 세레나데도 있다.

어제 본지 1면에 실린 김상택 화백의 만평이 화제다. 세상 모르고 잠들어 있는 김정일(金正日)국방위원장의 침실 밖에서 DJ는 기타줄을 퉁기며 창문을 열어 달라고 세레나데를 부른다. 그 뒤편에서 YS는 창문을 열고 "잠 좀 자자" 며 소리치고, 이회창(李會昌)한나라당 총재는 그 곁을 씩 웃으며 지나가고 있다. 6.15선언 1주년을 맞아 어제도 DJ는 金위원장의 답방을 촉구하는 세레나데를 불렀다.

최근 한달새 벌써 다섯번째다. 현충일에도 불렀고, CNN과의 인터뷰에서도 불렀다. 딱해 보였는지 이만섭(李萬燮)국회의장이 애걸하는 모습을 보이지 않는 게 좋겠다고 거들고 나섰다. 한번 말했으면 진중히 기다려야지 자꾸 매달리는 듯한 모습을 보이는 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세레나데 앞에서 마음이 흔들리지 않을 여자는 없다. 하지만 튕기는 맛이 없으면 여자가 아니다. 앞 뒤 안가리고 무턱대고 세레나데만 부르다가는 목이 쉴 수도 있고, 시끄럽다는 항의를 받을 수도 있다. 그런데도 DJ가 세레나데를 멈추지 않는 것은 열번 찍어 안 넘어갈 나무 없다는 오기 때문일까.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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