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하원 금융위원회 애널리스트들 청문회 열어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4면

월스트리트 애널리스트들에게 시련의 계절이 다가왔다. 미 하원 금융위원회는 14일(현지시간) 증권사 애널리스트들이 적절한 매수.매도 추천을 했는지를 따지는 청문회를 연다. 지난해 기술주를 사라고 추천했다가 투자자들에게 엄청난 손실을 안겨준 분석가들은 의원들의 가혹한 추궁을 앞두고 전전긍긍하고 있다.

◇ 미리 내건 '백기(白旗)' 〓미국 증권업협회(SIA)는 청문회 이틀 전인 12일 '새로운 윤리강령' 을 만들어 공개했다. 급한 불을 끄고 보자는 것이다.

새 강령에 따르면 애널리스트는 우선 자신과 가족들의 주식투자 현황을 공개하고, 자신이 매수추천한 종목은 일정 기간 매도를 금지했다. 자신의 추천종목에 책임을 지라는 뜻이다.

또 현재 '강력 매수' 와 '보유' 등급이 98%나 차지하고 있지만 앞으로는 '매도' 등 모든 투자등급을 폭넓게 사용하도록 했다. '애매모호한 표현' 이 불신을 초래했다는 지적에 따라 앞으로는 '명확한 표현' 으로 특정업체의 가치와 위험도를 따지도록 했다.

평가 대상인 업체가 애널리스트가 속한 금융회사와 거래 관계가 있다면 사전에 이를 공개해야 한다.

월스트리트에서 95%의 비중을 차지하는 골드먼 삭스.메릴린치.모건 스탠리.샐러먼 스미스 바니 등 14개 주요 증권사와 투자은행이 동의한 이 강령은 애널리스트에 대한 신뢰도를 높일 것으로 기대된다.

◇ 배경〓지난해 기술주의 추락이 결정적이었다. 퍼스트콜 톰슨 파이낸셜의 분석팀장인 척 힐에 따르면 지난해 3월 미 증시의 폭락 직전 '매수' 추천이 1백종목이라면 '매도' 추천은 한종목에 불과했다.

다트머스대의 켄트 워맥 교수는 증권사의 공식적인 애널리스트들이 독립적인 분석가들보다 매수추천 비율이 50%나 많았다고 지적했다. 특히 지난해 주가가 폭락한 인터넷 관련 종목은 강력매수나 매수가 2백5건이었으나 매도 추천은 한건뿐이었다.

지난 3월 작스인베스트먼트 리서치가 지난해 10월 이후 CSFB가 매도를 추천한 11개 종목을 조사한 결과는 더 황당하다. 이들 종목이 매수추천 종목보다 주가가 더 많이 올랐기 때문이다. UBS워버그증권이 올 들어 지난 3월 20일까지 비중 축소를 권고한 4개 종목 중 케이마트 등 2개 종목도 주가가 크게 올랐다.

특정업체와 증권사의 은밀한 거래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아시안 월스트리트저널은 최근 CSFB가 메릴린치를 제치고 고투닷컴과 주간사 계약을 하자 이 회사에 낙관적이던 메릴린치의 헨리 브로지트가 몇시간 뒤 고투닷컴의 등급을 '장기매수' 에서 '중립' 으로 내렸다고 보도했다. 메릴린치측은 이에 대해 "우연일 뿐" 이라고 주장했다.

◇ 전망〓하원청문회를 이끄는 리처드 베이커 의원은 "새 윤리강령은 협상의 시작일 뿐 끝이 아니다" 고 선을 그었다. 미 증권거래위원회(SEC)도 지난해 펀드 매니저 등 기관투자가들이 선점해온 기업 정보를 일반투자자에게도 공정하게 제공하도록 명령했다.

지난해 애널리스트만 믿다가 낭패를 본 투자자들이 워낙 많아 미 의회와 정부의 증권사와 애널리스트들에 대한 압박은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이철호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