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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주주 자주 바뀌는 기업 ‘요주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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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7면

산업용 필터 제조업체인 사이노젠은 최근 3년간 최대주주가 12차례 바뀌었다. 올해만 세 차례 변경 공시가 났다. 지난해 말 기준 최대주주의 지분율이 불과 2.99%에 불과하니 수시로 오너가 바뀌는 것이다. 게다가 누적된 적자로 자본은 완전히 잠식된 상태다. 이 업체는 1일 코스닥 상장 폐지가 확정됐다.

인쇄회로기판 제조업체인 에이스일렉트로닉스는 지난해 이후 대표이사 교체 공시만 11번이 나왔다. 대표이사 한 명당 임기가 불과 한 달 남짓이었던 셈이다. 이 업체는 회계법인으로부터 감사 의견을 받지 못해 결국 상장폐지 위기에 몰렸다. 외부 감사인은 보고서를 통해 “대표이사가 적절한 절차를 거치지 않고 회사의 자금을 사용하는 등 전반적인 내부 통제구조에 극히 중요한 취약점이 발견됐다”고 밝혔다.

1일 한국거래소는 12월 결산법인의 감사보고서와 사업보고서를 마감한 결과 11개 법인의 상장폐지가 확정됐다고 발표했다. 감사의견을 받지 못해 상장폐지 사유가 생긴 곳은 모두 30개사로 집계됐다. 상장폐지 실질심사 대상에 올릴지 심사 중인 업체도 7개사다. 여기에 감사보고서나 사업보고서를 제출하지 않은 곳까지 합하면 퇴출이 확정됐거나 퇴출 위기에 몰린 기업은 모두 52곳에 달한다.

이들 기업은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대부분 매출액이 30억원에 못 미치고, 적자가 누적되면서 자본잠식률도 50%를 넘는다. 대주주나 대표이사도 자주 바뀐다. 영업활동으로 돈을 벌지 못하고 자금부족에 시달리다 보니 유상증자, 전환사채와 같은 주식 관련 사채의 발행도 잦다. 자본잠식을 피하기 위한 감자도 단골메뉴다.

코스닥 시장에서 퇴출 위기에 몰린 30개사의 지난해 이후 공시를 살펴보면 최대주주 변경은 평균 1.5회, 대표이사 변경은 2회였다. 또 평균 3.3번의 유상증자를 시도했고, 전환사채나 신주인수권도 평균 한 차례 이상 발행했다. 일반적인 기업은 대표이사 교체나 유상증자 등이 평균 1회에 못 미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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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융감독원이 지난해 상장폐지된 기업을 대상으로 분석한 결과도 마찬가지다. 2년간 연속 적자를 기록한 곳이 86%, 최대주주가 2번 이상 바뀐 곳은 70%에 달했다. 상장폐지 기업이 코스닥 상장 기업 수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5%였지만, 유상증자와 주식 관련 사채 발행 건수에선 전체의 23%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공시만 잘 챙겨봐도 위험 징후를 포착할 수 있다는 게 주식시장 전문가들의 조언이다.

대신증권 박양주 연구원은 “대주주가 자주 바뀐다는 것은 그만큼 사업성이 없다는 의미”라며 “사업으로 돈을 못 버니 기업을 사서 되팔고 하는 과정이 되풀이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취약한 상황에 놓인 기업들이 시장의 테마에 편승해 사업목적을 수시로 바꾸는 방법으로 개인투자자를 유혹하는 경우가 많다”고 덧붙였다.

상장이 폐지되는 기업이 크게 늘면서 투자자 보호를 위한 장치를 강화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리스크컨설팅코리아 이정조 대표는 “현재 자산 규모가 큰 기업들만 분기별로 공인회계사의 재무제표 검토가 이뤄지고, 나머지는 반기와 연간 결산에만 받는다”면서 “최소한 우회상장을 했거나 횡령사건이 생긴 회사 등은 분기별 검토를 받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조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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