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6회 중앙음악콩쿠르 영광의 얼굴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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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내 최고 권위의 제36회 중앙음악콩쿠르가 지난달 31일 막을 내렸다. 우리 음악계를 이끌어갈 신예들이 화려하게 데뷔했다. 총 348명이 한 달 동안 겨뤘던 이번 대회의 정상에 오른 영광의 얼굴들을 소개한다.

김호정 기자


어려운 형편 딛고 이룬 꿈
피아노 박근태

박근태(19·연세대2)군은 1위의 비결을 ‘선생님 복’으로 꼽는다. 7살에 피아노를 시작한 그는 예원학교를 2년 만에 그만둬야 했다. “가정형편이 어려웠어요. 동네에 있는 중학교로 전학을 갔죠.” 박군은 “그땐 그래야 하나 보다 했지만 뒤늦게 속상했다”고 했다. 이때 주희성 서울대 교수가 그를 도왔다. SK텔레콤의 저소득층 문화교육 프로그램인 ‘해피 뮤직 스쿨’의 도움으로 처음 만난 주 교수에게 연주자의 길에 대한 조언을 받았다. 강남대의 안드레 보아이나인 교수도 조력자다.

검정고시를 거쳐 연세대에 입학한 후 유영욱 교수에게 배우고 있다. “모범생처럼 연주하던 제 스타일을 유 교수님이 완전히 바꿔놨어요. 덕분에 세달 밖에 준비하지 않은 콩쿠르에서 우승할 수 있었던 거고요.” 경비가 부족해 국제 콩쿠르를 포기한 적도 있다. 중앙음악콩쿠르를 코 앞에 두고 어머니가 수술을 받아 마음도 불안했다. 하지만 그는 “음악뿐 아니라 생활에까지 깊은 조언을 해주시는 선생님들을 보며 큰 꿈을 꾼다”고 말했다. 연주 목록을 늘리고, 작곡·즉흥연주에도 능숙해져 단순히 피아니스트가 아닌 음악가가 되는 것이 그의 꿈이다.

◆심사평=치열했던 두 차례 예선을 통과한 본선 진출자들은 모두 완벽한 기교와 높은 완성도, 뚜렷한 자기만의 개성을 가지고 있어 우열을 가리기가 힘들었다. 1위 입상자는 10대답지 않은 선 굵은 음악, 그리고 그것을 청중에게 정확히 전달할 수 있는 카리스마도 갖추고 있었다. 세부적인 면을 더 다듬고 내적 성장만 가미한다면 대형 피아니스트로 성장할 재목임에 틀림없다. 심사위원장 김용배


떨다가도 무대 서면 생기
바이올린 이희명

이희명(18·한예종2)군은 어린 시절 친할아버지에게 활 잡는 법을 배웠다. “바이올린 활을 제대로 잡고 집 안을 한 바퀴 돌고 오라고 했어요. 그 동안 활 잡은 손이 흐트러지지 않았나 검사하는 거죠.” 이군은 원로 비올라 연주자인 이준우(82)씨의 손자다. 비교적 크기가 작은 바이올린으로 시작해 나중에는 비올라를 가르치려던 할아버지의 계획은 손자가 크고 작은 콩쿠르에 잇따라 입상하면서 바뀌었다. 이군은 예원학교를 거쳐 서울예고 재학 중 한예종에 영재 입학했다.

“바이올린 연습을 하지 않을 때는 바이올린 음악을 듣는다”고 할 정도로 악기에 푹 빠졌다. “연주를 앞두고 대기실에선 떨리다가도 무대에만 서면 즐겁다”는 연주자 체질이기도 하다. 지난해 부산음악콩쿠르 1위에 이어 이번 대회에서도 심사위원 9명 중 8명에게 1위로 낙점 받으며 우승했다. “화려하고 감성적인 낭만시대의 음악이 잘 맞는다”는 그는 “바흐처럼 침착하고 구조적인 작품에 다소 서툰 현재의 단점을 빨리 극복하는 것”을 다음 목표로 정해놓고 있다.

◆심사평=기술적·음악적으로 대부분 상당한 수준의 연주였다. 참가자마다 개성 또한 돋보였다. 다만 연주장의 음향과 악기, 그리고 연주자 자신이 삼위일체가 된다는 생각이 부족한 참가자들이 많아 아쉬웠다. 공간을 이해하려면 상당한 능력이 필요하다. 또한 악기가 표현할 수 있는 능력 범위 안에서 활의 압력과 스피드의 관계를 조절하는 능력 또한 참가자들이 보강해야 할 부분이었다.  심사위원장 안동호


동요가 너무 좋아 시작한 노래
성악 남자 이명현

창작 동요제, 열려라 동요세상, 어린이날 특별공연. 이명현(22·서울대4)씨가 어려서 섰던 무대다. “동요가 너무 재미있어서 노래하기 시작했는데 이렇게까지 될 줄은 몰랐어요”라고 농담 섞인 수상 소감을 전했다. 그는 초등학교 때 취미로 동요 중창단에 들어갔다. 중학교에 가기까지 맑고 예쁜 노래를 두루 익혔다. 변성기를 거친 후 노래를 계속해야겠다고 생각해 바리톤 양재무씨를 찾아갔고, 본격적으로 노래를 배우기 시작했다.

“남들 앞에서 노래하는 게 좋아요. 이번 대회에서는 참가자 중 제가 가장 어리고, 경험도 부족해서 긴장했는데도 무대에서 노래하는 순간 엄청난 에너지가 느껴졌어요.” 이씨는 “그간 도전한 것 중 가장 큰 대회에서 1위에 올라 더 기쁘다”고 했다. 본선 무대에서 슈트라우스·마스네·도니제티를 안정감 있게 소화했다. “대학 입학 후 배우기 시작한 박현재 교수님께서 하나부터 열까지 지도해주셨어요. 교수님도 나 자신도 깜짝 놀랄 만큼 실력이 점점 좋아지는 게 음악을 하는 가장 큰 재미입니다.”

◆심사평=이번 콩쿠르 역시 예년의 수준을 유지했다. 반면 새로운 점도 있다. 입상자와 비입상자의 실력 격차가 많이 좁혀졌다는 사실이다. 수준의 평준화는 무척 고무적인 일이다. 아쉬운 점으로는 음정의 문제를 들고 싶다. 많은 사람이 고음은 물론 중음·저음에서도 정확한 음정이 나오지 않았다. 유튜브·CD·MP3 등 오디오를 통해 음정을 익히는 사람이 많기 때문으로 보인다.  심사위원장 강무림


늦은 출발, 쑥쑥 느는 기량
첼로 현세은

“실력이 바닥이었어요.” 현세은(20·서울대2)씨는 예원학교 첼로 전공 15명 중 13등으로 입학했다. 발레·성악·미술·피아노 등에 한 눈을 실컷 팔다 뒤늦게 첼로를 시작한 탓이다. “기본기가 부족해 실력이 좀처럼 늘지 않았어요.” 연습 시간을 늘려봐도 음악이 좋아지지 않았다고 한다. 이쯤 되니 진로를 다시 생각해봤다. “그런데 첼로를 손에서 놓으니 허전해서 힘들더라고요.”

잘하려는 생각보다 음악을 사랑하는 마음이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됐다. 단순한 반복 연습에서 벗어나 시야를 넓힐 필요를 느꼈다. 그 결과 고등학교 3학년에 스스로도 놀랄 만큼 실력이 좋아졌다. 대학교에 입학한 이후에는 첫 실기시험에서 1등을 했다. 이번 대회는 가파르게 올라가고 있는 자신의 실력을 검증한 기회였다. “요즘처럼 내 음악에 감동받으면서 연주한 때가 없었던 것 같아요. 특히 대학에서 자유롭게 생각하고 공부하면서 음악이 점점 더 좋아져요.” 음악적 발전의 원천을 남자친구와 동아리로 꼽는 스무 살의 연주자는 “이제 국제 콩쿠르에 도전하겠다”며 또 한번의 비상을 예고했다.

◆심사평=모든 본선 진출자가 세계적인 수준을 보여줬다. 만족스러웠다. 국제 콩쿠르에 바로 참가해도 입상권에 들 것이라는 예상을 하게 될 정도다. 특히 1위 입상자는 음악적·기술적인 면에서 탁월한 모습을 보여줘 장래를 기대하게 했다. 모든 참가자의 기량이 훌륭했다. 이들이 계속 노력한다면 음악으로 한국을 대표하는 첼리스트로 성장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  심사위원장 현민자


지휘·작곡에서도 재미 느낀다
클라리넷 유청

유청(22·서울대4)씨는 5년 만에 콩쿠르에 나와 우승했다. “몇 번이고 출전을 준비했지만 마음에 들지 않으면 막판에 포기했어요.” 현대 작곡가 알랭 베르노의 복잡한 무조(無調) 음악을 완성도 있게 연주해 1위에 올랐다. 본선 진출자 7명 중 2명이 대회 직전 기권할 정도로 까다로운 작품이었다. 그는 “음반을 하나도 찾을 수 없을 정도로 생소한 작품이었지만, 꼼꼼히 공부해 이번만큼은 잘 할 수 있을 거란 생각이 들었다”고 말했다.

그는 초등학교 5학년 때 클라리넷을 시작했다. “높은 음이 아름답고 변화가 많아 재미있다”고 했다. 그의 최종 목표는 지휘자다. 건반악기·현악기 등 서로 다른 소리와 호흡을 맞추는 과정을 사랑하고 오케스트라 지휘, 작곡 등에서 음악의 재미를 느낀다는 것이다. 작곡과 지휘 전공으로의 전과를 고려했을 정도다. 이번 대회에서 난해한 현대 음악의 구조를 파악하는 데에도 이런 음악적 관심의 힘이 컸다. “클라리넷 실력을 우선 든든히 쌓아놓고 지휘자로 성공하고 싶습니다.”

◆심사평=본선곡인 ‘서정적 협주곡’을 만든 알랭 베르노는 1932년생, 현존 작곡가다. 모든 사람에게 생소한 곡이어서 암보하는 데 많은 어려움이 있었을 것이다. 참가자들은 한두 군데씩 실수를 했다. 1위 입상자는 작곡자가 원한 템포에 가장 근접한 연주를 했다. 음색이 너무 날카로운 것이 옥의 티였다. 심사위원장 이창수



◆성악 여자 심사평=본인이 가진 소리보다 무섭고 세고 강한 음악을 선정해 노래하면서 무리하는 모습을 볼 수가 있었다. 반드시 지도 교수와 상의해 자신의 음색과 음량에 맞는 곡을 선정·준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본다. 또한 음정을 익힐 때는 피아노를 직접 치면서 노래하는 것이 올바른 연습 방법이라고 생각한다. 오디오나 컴퓨터 등은 참고 수단일 뿐이다.  심사위원장 강무림

◆작곡 심사평=전체적으로 범작에 그쳐 1, 2위 입상자를 내지 못했다. 심사위원들이 보편적으로 공감할만한 수작이 없었기 때문이다. 대체로 현대적인 표현 소재의 활용이나 구성 등 기본적인 요소들을 갖추고 있긴 했지만 모두 관습적인 표현의 영역을 넘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왜 우리는 음악작품 제목을 라틴어·영어·독일어로 붙여야 하는지에 대해 이제는 한번쯤 생각해볼 때라고 본다. 심사위원장 유병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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