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언대] 아파트 위탁관리제도 폐지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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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아파트 가구수가 5백20만세대에 이르는 시대가 왔다. 그러나 아파트 관리제도와 정책은 20년 전이나 지금이나 다르지 않다. 현재 아파트의 80% 정도는 관리를 자치적으로 하지 않고 주택관리 전문회사에 맡기고 있다. 이 경우 주민들은 위탁수수료 및 각종 용역계약과 관련한 리베이트 등을 부담해야 한다.

아파트 관리를 둘러싼 비리사건이 심심찮게 보도되는 것에도 주목해야 한다.

1970~80년대에 건립된 아파트의 시설 노후화로 인한 수선.유지비용에 보일러.배관.엘리베이터.방수 등의 공사에 드는 돈을 합치면 시장규모가 연 5조원대에 이른다. 이런 막대한 시장을 주인의식이 없고 영리를 목적으로 하는 관리회사에만 맡기면 그들이 각종 이권에 개입할 소지가 있다.

따라서 현행 위탁관리 제도를 입주자 대표회의와 전문 주택관리사가 서로 견제.감시하는 제도로 바꿔야 한다. 위탁관리 방식을 자치적 관리 방식으로 바꾼다면 연간 관리비 부담액이 1조2천억원 정도 줄어든다. 아파트 관리는 '관리사무소' 가 하는 것이니 자치적으로 한다고 해도 관리에 공백이나 혼란이 생기지 않는다.

지난 3월 국세청이 위탁관리비에 부가가치세 10%를 물리겠다는 방침을 발표했을 때 건설교통부가 이를 그대로 밀어붙였다면 위탁관리제도를 자연스럽게 폐기 또는 도태시키는 계기로 삼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무슨 영문인지 지난 4월 임시국회에서는 위탁관리비에 부가세를 부과하겠다는 방침을 3년간 유예하는 내용의 조세특례제한법 개정안을 여야 합의로 통과시켰다. 오랜 현장 경험으로 볼 때 현행 위탁관리제도를 이대로 방치해선 안된다고 생각한다.

이병수 전 전국아파트 연합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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