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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산은 산 물은 물 (11)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17면

11. 불기자심

전신이 욱신거리는, 녹초가 된 몸을 이끌고 큰스님을 찾아뵈었다.

"어제 뭐라 했노. 좌우명 달라 했제. 너거들 낯짝 보니 좌우명 줘 봤자 지킬 놈들이 아이다. 그러니 그만 가봐라!"

무슨 청천에 벽력인가. 그렇게 힘든 절을 시켜 놓고는 "그만 가봐라" 라니. 황당하다 못해 어이도 없었다. 그냥 물러설 수 없었다.

"큰스님, 그래도 지키고 안 지키고는 다음 문제고 우리가 이렇게 힘들게 절 돈을 냈는데 좌우명을 주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

오기에 애원을 보태 말씀을 올리니 큰스님이 다시 지그시 바라본다.

"절돈 낸다고 애는 썼으니, 좌우명을 주기는 주지. "

잠시 침묵하던 성철스님이 말했다.

"속이지 마라! 이 한마디 주고 싶다. "

너무나 실망스러웠다. 큰스님이 주는 좌우명이라면 무슨 거창한, 정말 평생 실행하려고 해도 힘든 어떤 굉장한 말씀일 것으로 기대했는데. 기껏 '속이지 마라' 정도인가. 너무 쉬운 좌우명이다. 떨떠름한 표정으로 앉아 있으니 큰스님이 다시 묻는다.

"와(왜 그러니), 좌우명이 그래 무겁나. 무겁거든 내려놓고 가거라. 아까도 너거들은 좌우명 못지킬 거라 안했나. "

내가 실망하는 마음과는 정반대의 말씀을 하시는 것이었다. 큰스님께서 그렇게 말씀하니 '실망스럽다' 는 말을 입밖에 내지도 못하고 돌아섰다.

"예, 그럼 속세에 가서 잘 지켜보겠습니다. "

하산하는데 억지로 절한 몸이 제대로 움직이지 않았다. 걷다가 쉬다가 다시 바닥을 기다시피 하면서 백련암을 떠났다. 친구에게 "괜히 백련암 오자고 해가지고 몸만 작살났다" 고 투덜거렸다.

당시 큰스님이 주신 '속이지 마라' 는 좌우명은 어른이면 누구나 흔히 하는 말이었다. 내가 '너무 쉽다' 고 생각한 것은 지금까지 세상을 살아오며 남을 속이고 살아오지는 않았다는 자부심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니 실망할 수밖에.

그로부터 석달쯤 지났다. 몸도 풀리고 백련암 다녀온 일도 잊어버리고 살아가던 중 문득 "속이지 마라" 는 큰스님의 말씀이 떠올랐다.

"그렇다. 내가 지금까지 살면서 남을 속이고 산 일은 없지만, 나 자신을 속이고 산 날은 너무도 많지 않은가. "

큰스님의 말씀을 "남을 속이지 마라" 로 해석하면 쉬울 수 있다. 그러나 "자기를 속이지 마라" 고 해석하면 정말 평생 지키기 힘든 좌우명이 아닌가. 갑자기 큰스님을 다시 찾아 뵙고 싶은 충동이 일어났다.

그해 7월, 이번에는 혼자서 백련암을 찾았다. 보통 문이 굳게 잠겨 있다는 백련암인데, 그날은 문이 환히 열려 있었다. 마침 큰스님 혼자서 마당을 왔다갔다 하고 있었다. 반가운 마음에 큰스님께 다가가 인사했다.

"큰스님 편안하셨습니까. "

"웬 놈이고. "

순간 실망감이 가슴속을 꽉 채웠다. 불과 몇달 전 죽을 고생을 하고 좌우명을 받아갔는데 몰라보다니. 반갑게 맞아 줄 것이라고 생각하고, 반가운 마음으로 인사를 드렸는데 생전 처음 보는 표정을 지으니 실망이 클 수밖에 없었다. 어쩔 수 없이 "지난 3월에…" 라며 설명을 했다.

"그랬나? 나는 모른다. "

말문이 막힌다. 감정을 가지고 큰스님께 말씀드려봤자 아예 이야기가 되지 않을 것이 뻔하다. 용기를 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큰스님, 불교에 대해 알고 싶어서 찾아뵈었습니다. "

"불교? 불교에 대해 내가 아는 것이 아무 것도 없데이. 불교를 알고 싶으면 큰절에 내보다 더 잘 아는 사람이 있거든. 해인사 강원에 강주스님이 불교를 내보다 더 잘 아니까, 거기 가서 물어봐라. "

강원(講院)은 불교의 교리를 가르치는 학교와 같다. 큰절이란 해인사의 본찰(本刹)을 말한다. 큰스님의 가르침을 받겠다고 찾아왔는데, "다른 곳으로 가라" 는 얘기나 마찬가지다. 무서우면서도 엉뚱한 스님이다.

원택 <성철스님 상좌>

정리=오병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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