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여성 "몸에 붙는 옷, 짙은 화장 천박합네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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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51면

일견 변화없는 회색도시처럼 보이는 평양이지만 아름다움에 대한 관심은 남한에 못지 않다. 평양 도심의 창광거리나 락원백화점 일대의 패션 리더들은 남한과 다를 바 없이 세련된 옷차림으로 도심을 활보하고 있다. 지난 4일과 6일 디자이너 이영희씨의 패션쇼가 열린 평양에서 옷차림과 화장법 등 북한 여성들의 멋내기 비결을 살펴 봤다.

▶바지보다 치마, 티셔츠는 사절〓평양 거리를 걷다보면 검은 색 치마를 입은 여성들을 가장 많이 발견할 수 있다. 짙은 색의 치마에 수수한 남방이나 화려한 색상의 블라우스를 어울리게 입는 게 대표적인 옷차림. 꽃무늬나 페이즐리 무늬가 화려하게 수놓인 원피스나 투피스를 입은 평양 멋쟁이들도 많다.

길이는 약속이나 한 듯 무릎선을 고수한다. 바지를 입은 여성들은 거의 찾아볼 수 없다. 창광거리에서 만난 30대 여성은 "북조선의 여성들은 외출할 때 치마를 입는 것이 원칙입니다" 라고 전했다. T셔츠 등 몸매가 드러나는 옷차림은 평양에선 예의에 어긋나는 일에 속하는데 안내원 서옥선씨는 "몸에 붙는 옷을 입으면 천박하게 여긴다" 고 말했다.

▶화사한 원색의 한복 저고리〓한복을 '민족옷' 이라고 부르며 파티나 공식적인 행사가 있을 때 입는다. 평양 여성들의 옷 가운데 가장 화려하다. 락원백화점 한복코너 직원 윤영심씨는 "빨강.분홍.하늘.녹색 한복이 가장 인기" 라고 말했다.

저고리와 치마는 같은 색으로 맞추는 게 센스있는 옷차림. 기계수나 손수를 놓은 한복들은 무지 한복 보다 비싸고, 화려한 색상의 스팽글(반짝이)을 옷 전체에 촘촘히 단 한복은 가장 비싼 축에 든다.

스팽글을 단 천은 한마에 1백15원. 즉 한복 한벌을 만드는데 4백원이 넘게 드는 셈이니, 일반인들 월급의 두배에 해당하는 가격이다. 많은 평양 여성들은 천을 끊어다 집에서 직접 만들어 입거나, 전문제작소에 맡겨 한복을 만든다. 한복 밑에도 꼭 구두를 싣는 것이 특징이다.

▶남자들도 여름엔 반팔 양복〓여름에 평양 남성들은 반소매 양복을 즐겨 입는다. 남한에선 여름에도 긴 소매 양복을 입는 것과 다르다. 감색.검은색.팥죽색.재색 등이 인기있는 색상들. 양복의 형태는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입어서 유명해진 점퍼 형식과 목까지 채우는 차이나칼라 형태 등 다양하다.

▶복고적인 헤어스타일〓지금 평양에선 컬이 굵은 파마머리를 가장 많이 볼 수 있다. 앞머리는 무스로 고정시키고 긴 뒷머리는 핀으로 묶으면 보편적인 북한 여성들의 머리형태가 된다. 고려호텔 미용실의 김옥경씨는 "70년대부터 해왔던 머리 모양으로 나이 든 층에서 많이 한다" 며 "최근 젊은 여성들 사이에선 생머리를 층지게 자른 짧은 커트 머리가 인기" 라고 말했다.

이가자 미용실의 이가자씨는 "60년대 말에 우리나라에서도 많이 했던 스타일들" 이라며 "염색을 전혀 안하기 때문에 자연스런 머릿결이 보기 좋지만 머리스타일을 다양화할 필요는 있을 것 같다" 고 말했다.

▶액세서리와 가방〓평양의 젊은 여성들 사이에선 손에 드는 가방보다 어깨에 메는 큰 가방이 인기다. 남한의 젊은 여성들이 작은 손가방을 들고 다니는 것과는 반대.

중년 여성들은 손에 드는 핸드백을 좋아한다. 액세서리의 경우 목걸이와 반지는 보편적이지만 귀걸이는 잘 하지 않는다. '살양말' 이라고 불리는 스타킹은 한여름에도 빼놓을 수 없는 멋내기 아이템이다. 따가운 볕을 가리기 위해 여름이면 흰색의 커다란 챙모자를 많이 쓰고 화려한 양산은 멋쟁이들의 필수품이다.

▶수수한 얼굴 화장〓북한에서 가장 인기 있는 화장품은 신의주 화장품 공장에서 만드는 '너와 나' 를 꼽는다. 그외에도 '금강산' '메아리' 등이 많이 쓰이는 화장품. 대부분의 여성들이 외출할 땐 화장을 꼭 하는 편이지만 진한 화장은 환영받지 못한다. 거의 한 듯 안한 듯하게 '품위' 를 지키는 게 평양 화장의 포인트다.

화장은 남한과 마찬가지로 살결물(스킨).유액(로션).크림.파운데이션.고체분.연지(립스틱)의 순서로 한다. 눈썹은 원래 모습을 그대로 살려서 그린다. 크고 또렷한 눈 모양을 선호하기 때문에 눈매를 강조하는 화장이 많다.

▶평양의 미인은 남한의 미인과 정반대?〓이영희 패션쇼를 위해 평양에 간 박둘선.노선미 등 우리나라 최고 모델 16명이 미인 대접을 받았을까. 아니다. 고려호텔에서 만난 김명석씨는 "시원하게 생기질 못했어요. 키만 크고 너무 말라서 옷맵시가 안나는걸요" 라고 평가했다.

또 "키가 정말 크군요. 운동하지 그랬어요" 라는 게 남한 모델을 본 평양 시민들의 반응. 키가 크면 '슈퍼모델 감이로군' 이라고 하는 우리와 다른 반응이었다. 평양의 미인은 동글동글하고 하얀 얼굴, 약간 통통한 몸매, 큰 키에 까맣고 커다란 눈을 가진 여성이다. 갸름한 얼굴, 키가 크고 마른 체형을 선호하는 남한과 거의 정반대라고나 할까.

박혜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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