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창촌 나온 여성들 "쉽게 살아온 과거 부끄러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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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성매매 피해 여성 보호단체인 광주 한올지기쉼터에서 4일 성매매 여성들이 재활상담을 하고 있다. 양광삼 기자

"그동안 인생을 너무 쉽게 살아온 것 같아요."

3일 오후 1시10분쯤 광주시 동구 금남로에 있는 한 고입 검정고시학원. 수학 수업을 받고 있는 이모(23)씨는 강사의 설명이 이해가 가지 않는 듯 고개를 연방 갸우뚱했다.

이씨는 지난달 23일부터 경찰의 성매매 특별단속이 실시되자 8년여 동안 전전하던 집창촌을 빠져나와 고입 검정고시를 준비하고 있다. 그는 동생 같은 학원 동료들에게 모르는 문제를 서슴없이 물어보는 등 새로운 인생을 찾기 위해 안간힘을 쓰고 있다.

그는 "자존심은 중요하지 않다. 손님들에게 무시당하는 등 이보다 더 궂은일도 견뎌왔다"며 "대학을 나와 사회복지사가 돼 불우이웃을 도우며 사는 게 꿈"이라고 말했다.

전남 신안군 흑산도 등 섬지역 다방 등에 팔려다니며 7년여 동안 유흥업소에서 일을 하다 지난달 초 업주 몰래 도망친 이모(28)씨는 광주의 한 요리학원에 다니고 있다. 그는 학원에 갈 때는 반드시 남동생(21)과 동행한다. 언제 업주가 나타나 자신을 잡아갈지 모른다는 불안감 때문이다.

이씨는 학원에서 가장 늦게까지 공부를 하는 '억척녀'로 소문이 났다. 그는 "하루빨리 자격증을 따 음식점에 취직해 돈을 벌어 빚을 갚고 떳떳하게 살고 싶다"고 말했다. 미용기술을 배우는 오모(26)씨도 두 달 전만 해도 대전.전주 등지의 티켓다방에서 윤락행위를 하며 살았다. 오씨는 "편하게만 돈을 벌려 했던 과거가 부끄럽다. 떳떳한 일자리를 갖게 되면 그동안 연락을 끊었던 부모님을 만날 것"이라고 말했다.

성매매 특별단속 이후 집창촌 등 유흥업소 생활을 청산한 윤락여성들이 자립 기반을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광주 성매매 피해 여성 보호단체인 '한올지기' 쉼터에선 10명의 여성이 재활을 통해 새로운 삶을 준비하고 있다. 이들 모두 특별단속 이후 이곳을 찾았다. 이 단체는 여성부의 지원으로 운영하고 있으며 재활여성들이 자격증을 딸때까지 학원비 등을 전액 대주고 자격증을 취득한 뒤에는 취업까지 알선해준다. 또 창업을 원할 경우 최고 3000만원까지 융자해준다.

이들 여성이 자립 기반을 다지기 위해 배우는 기술은 미용.조리.꽃꽂이.도배 등 다양하다. 이들은 자신의 적성에 맞는 분야를 선택해 5~10개월 기술을 배운 뒤 자격증을 취득, 여성부에 창업자금을 신청해 반듯한 자신의 일터를 가질 꿈에 부풀어 있다.

10여년 동안의 유흥업소 생활을 그만두고 조리사 자격증을 따기 위해 한 달째 기술을 배우는 김모(29)씨는 "처음엔 마땅한 일자리가 없어 유흥가로 되돌아갈까 방황도 했으나 지금은 조리사 자격증 취득에 몰두하고 있다"며 "열심히 노력만 하면 자립할 수 있을 것 같다"고 말했다.

집창촌을 나온 여성들은 한결같이 "강한 의지를 갖고 노력만 하면 새로운 삶을 찾을 수 있는 길은 많다"고 말했다.

박순 광주 한올지기 소장은 "본인이 원할 경우 숙식 제공과 함께 재활을 위한 취업교육 등 다양한 기회가 주어진다"고 말했다.

광주=서형식 기자 <seohs@joongang.co.kr>
사진=양광삼 기자 <yks2330@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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