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앙시평] 평등사상과 국제 경쟁력

서울 서초동에 있는 대법원 청사 전면에는 '자유, 평등, 정의' 란 세 단어가 크게 새겨져 있다. 국민의 자유와 평등을 지켜 법의 이념인 정의를 실현하겠다는 사법부의 의지를 나타내는 것이리라 생각된다. 그만큼 자유와 평등은 두 가지 모두 우리에게 소중한 가치다.

***불평등한 것도 평등 취급

과거 절대군주시대부터 일제 강점기를 거쳐 권위주의 정권에 이르기까지 우리 국민은 국가권력으로부터 자유를 획득하기 위해 많은 희생을 감수했다. 그러나 국민의 자유권이 어느 정도 보장돼 있는 오늘에 있어서는 평등사상이 더욱 강조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평등의 원칙이란 '같은 것은 평등하게, 서로 다른 것은 불평등하게' 다루는 것이다. 따라서 같은 것을 불평등하게 다루는 것이 평등의 원칙에 어긋남은 물론이지만 서로 다른 것을 평등하게 취급하는 것도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는 것이다.

우리나라 대법원과 헌법재판소는 모두 법 앞에서의 평등의 원칙은 모든 국민을 절대적으로 평등하게 대우한다는 것이 아니고 불합리한 차별대우를 금지한다는 취지라고 풀이한다.

독일 헌법재판소도 평등의 기준에 관해 "본질적으로 평등한 것을 자의적으로 불평등하게 취급하거나 본질적으로 불평등한 것을 자의적으로 평등하게 취급하는 것의 금지" 라고 해석한다.

이와 같이 평등이란 절대적 평등이 아니고 상대적 평등을 뜻한다는 것은 의문의 여지가 없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에서는 평등의 의미를 절대적인 것으로 잘못 풀이한 결과 오히려 평등의 원칙에 반하고 개인은 물론 우리 사회의 발전에 방해가 되는 경우가 적지 않다.

그 현저한 예로 지적할 수 있는 것이 교육 평준화 정책이다. 천연자원이 부족한 우리나라는 일찍부터 의무교육을 실시하는 등 교육입국에 힘쓴 결과 높은 수준의 인적 자원을 보유하게 됨으로써 이를 기반으로 산업을 일으켜 빠른 속도의 경제발전을 이룩했다.

그러나 하향 평준화된 틀에 박힌 교육제도 아래에서는 오늘날과 같은 무한경쟁의 정보화 시대가 요구하는 개성과 창의성을 갖춘 미래의 지도자를 길러낼 수 있을 것인지 의문이다.

학생 개개인의 능력의 차이, 학교간의 교육수준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는 교육 평준화 정책은 학부모들에게 엄청난 사교육비의 부담을 안겨주었으면서도 학생들의 학력은 급속하게 저하되는 현상을 초래하고야 말았다.

중.고등학교 평준화의 폐해가 이러한데도 그것도 모자라 이제는 고액 과열과외를 막기 위해서는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는 극단적인 주장마저 나오고 있으니 우리나라 교육이 국제경쟁력을 갖출 날은 요원하기만 하다.

다음으로 의료 평준화 정책을 지적할 수 있다. 그동안 정부는 의료보험을 확대 실시하는 등 지속적인 노력으로 국민 개보험 시대를 열어 모든 국민이 골고루 의료 혜택을 누리는 성과를 달성했다. 그러나 자본주의 체제 아래에서 국제적으로 경쟁력 있는 수준 높은 의료 서비스는 그에 합당한 보상이 있을 때 실현 가능한 것이다.

의사의 의술의 차이와 병원 설비의 차이를 인정하지 않고 균일하게 낮게 책정된 의료수가로는 다양화돼 가는 환자의 수요에 따른 차별화된 높은 수준의 의료 서비스를 제공할 수 없음은 당연하다.

***실패한 교육.의료 평준화

이러한 한국적 현실에서 자녀교육을 위해 남부러워하는 직장을 버리고 이민을 떠나거나, 의사소통 등의 불편과 높은 의료 수가를 감수하고 질병 치료를 목적으로 외국 병원을 찾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있다고 하는데, 이는 바로 우리나라 교육과 의료의 수준이 국제 경쟁력을 상실했다는 징표라고 말할 수 있을 것이다.

더군다나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프다" 는 질투심에 휩싸여 성공한 사람을 시기하고 폄하함으로써 잘못된 평등의식을 만족시키는 데 급급하다면 이 사회의 발전을 기약하기는 어렵다. 개성과 창의성을 바탕으로 자유경쟁에서 승리한 자를 정당하게 평가해 그에 합당한 보상을 해주는 것은 결코 평등의 원칙에 위배되는 게 아니다.

모든 사람의 능력이 자신과 이 사회를 위해 최고로 발휘될 수 있는 여건을 만드는 것이야말로 다가오는 무한경쟁시대에 우리나라가 선진국으로 발돋움할 수 있는 첩경임에 틀림없다.

한상호 변호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