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아시아 강소기업에 배운다] 8. <끝> 전문가 좌담 -'강소기업 강국' 되려면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06면

▶ 중소기업도 시장 추이를 잘 읽는 기술 경영이 중요하다고 좌담 참가자들은 입을 모았다. 왼쪽으로부터 장지종 부회장, 박봉규 사무총장, 김홍 교수.신인섭 기자

일본.중국.대만.싱가포르 등 4개국 강소기업들의 가장 큰 공통점은 뛰어난 기술력을 갖추고 있다는 점이다. 그래서 작지만 강한 이들 기업은 국가 경제의 튼튼한 버팀목이자 경기 부침의 완충 역할을 훌륭하게 수행하고 있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강소기업으로 탈바꿈하기 위한 해법을 전문가 좌담을 통해 알아봤다.

<참석자 명단>

▶ 김홍 호서대 교수, 글로벌창업대학원장
▶ 박봉규 한국산업기술재단 사무총장
▶ 장지종 중소기업협동조합중앙회 부회장
▶ 사회=박방주 중앙일보 과학전문기자

▶사회=기술 경영이 강소기업의 핵심이다. 기술경영이 조명 받는 배경이 뭔가.

▶김홍 교수=1970~80년대 일본이 미국을 경제력에서 따라잡았을 때 미국은 이 문제에 대한 심각한 검토에 들어갔다. 일단 덤핑 등을 거론하며 치열한 싸움을 벌인 뒤 학자들을 3년 동안 일본으로 보냈다. 이들은 "미국이 일본에 진 것은 기술 경영 때문"이라는 결론을 내렸다. 미국은 이후 기술을 재편했다. 소비자의 욕구를 염두에 둔 기술 경영을 도입했다. 우선 연구.개발(R&D) 부서를 사내 전체에 개방했다. 박사와 석사급 등의 연구원만으로는 소비자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없다는 판단에서다. R&D 전략도 세우고 세부적인 일정을 만들었다. 결국 미국은 일본을 다시 누를 수 있었다. 이번에 연재된 기업들의 최고경영자들은 기술 경영을 배웠든, 안 배웠든 기술 경영 마인드를 갖고 있다. 소비자의 욕구에 의해 개발된 기술은 전망도 밝다. R&D 부서가 막혀 있으면 소비자를 모르기 때문에 낙오할 가능성이 크다.

▶사회=우리나라에도 강소기업이 있지만 환경이 척박한 편이다. 민간 차원에서 제시할 해법은 없겠는가.

▶장지종 부회장=중국이 급격하게 부상하다보니 가격 경쟁력을 잃은 우리 중소기업들도 기술의 중요성을 뼈저리게 인식하기 시작했다. 2000년 벤처 붐이 토양을 만들었다고 생각한다. 후유증이 여러 가지로 나타났지만 긍정적인 면도 많다. 기술을 등에 업은 창업 붐이 다시 한번 확산되기 위해서는 침체에 빠져 있는 코스닥을 살리는 것이 우선적인 과제다.

▶박봉규 사무총장=아무리 좋은 기술이 있어도 시장에서 받아주지 않으면 소용이 없다. 우리 중소기업들이 성공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하나는 기술 개발에 전력을 쏟고 있기 때문이다. 기술 개발에 30%, 시제품 개발에 30~40%, 시장 개척에 30~40% 정도를 나눠 써야 하는데 기술 개발에 100%를 쓰다 보니 시제품도 만들지 못하고 망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이들이 어려움을 겪으면서 기술유출 문제가 부작용으로 나타나고 있기도 하다. 정부는 개발자금을 나눠주는 데 급급하지 말고 좋은 기술을 사업화하는 데 역점을 둬야 한다.

▶김 교수=현장에서 보면 기술 개발 자금도 부족한 상황에서 창업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다 보니 기술을 완성해놓고도 6개월이나 1년 내에 망하기 일쑤다. 이공계 학생들에 대한 경영교육이 절실한 배경이기도 하다. 이에 반해 창업하는 데 10배 이상의 투자를 받는 경우도 있다. 이런 기업들은 대부분 하이테크 기업들인데, 여전히 하이테크 기업이 각광을 받고 있다는 말이다. 남들이 보기에 기술 면에서 변별력이 없는 기업들이 주로 자금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런 기업들이 80% 정도 된다.

▶장 부회장=자금 면에서 숨통을 틔우기 위해서는 조건부 기술 개발이 활성화돼야 한다. 예를 들어 국방부는 필요한 기술을 공고하고, 기술을 개발하겠다는 업체를 모집한 뒤 그 기술이 성공하면 5년간 의무적으로 구매해주고 있다. 한전도 같은 방향으로 가고 있다. 기술 개발이 성공했을 때 구매를 보장해주는 제도가 정착되면 성공 가능성이 커진다. 조달청에서 구매를 할 때 납품실적을 따지는데, 국방부에 납품한 실적을 토대로 다른 판로도 생기게 된다.

▶사회=대기업과 중소기업의 협력도 중요하다고 보는데.

▶박 사무총장=그런 점에서 최근 자동차 5개사와 중소기업의 부품 개발 협력은 상생의 프로그램으로 생각된다. 지금까지 중소기업은 대기업과의 협력을 다소 부정적으로 여겨온 것이 사실이다. 잠시 납품을 받다가 기술을 빼앗아가는 사례가 종종 있었기 때문이다. 대기업도 중소기업의 R&D 능력을 의문시해 왔다. 서로를 경원시하는 풍조는 사라져야 한다.

▶장 부회장=자동차뿐 아니라 전자와 건설 등 5개 분과를 통해 협력 프로그램을 만들고 있다. 대기업들이 연구비와 기술 개발을 지원하면서 구매까지 보장한다면 중소기업에 실질적인 도움이 될 것이다.

▶사회=기술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하는 제도가 있다. 그러나 금융기관에서 기술만으로 자금을 얻기는 '하늘의 별 따기'라고 중소기업들은 하소연한다.

▶장 부회장=미국은 철저하게 기업의 신용과 사업계획서를 놓고 판단한다. 자체 또는 외부기관의 평가를 통해 사업계획서가 실현 가능성이 있다고 판단되면 대출조건을 협상한다. 담보가 제시되면 이자가 싸지는 식이다. 그러나 우리는 아무리 기술의 우수성을 주장해도 금융권은 담보부터 챙기는 것이 관행이다. 기술평가센터를 통한 보증은 전체의 5%에 불과한 실정이다. 우선은 평가 결과에 승복하는 문화가 중요하다. 기술의 우수성을 중시하는 기업주와 기술과 사업성을 동시에 따지는 평가기관 사이의 간격을 좁혀야 한다. 간격이 너무 크다 보니 한국기술거래소 등 기술평가 기관은 많지만 금융권에서 그 결과를 신뢰하지 않는다.

▶박 사무총장=평가가 신뢰를 얻으려면 평가자의 연륜이 쌓여야 하는데, 우리 실정은 그렇지 못하다. 기술거래소가 있지만 사람이 부족한 편이다. 평가하는 사람을 정부가 직접 육성할 필요가 있다. 심판의 자질이 뛰어나야 금융권도 승복할 것이다.

▶장 부회장=개발 사업화 자금도 문제다. 최고 한도를 5억원으로 못박아 놓았다. 실제 10억원이 필요한데도 한도 규정을 들어 5억원밖에 지급되지 않는다. 그 기업이 필요한 자금이 얼마인지 알아보기도 전에 미리부터 선을 긋고 시행하다 보니 모두가 만족하지 못한다.

▶김 교수=중소기업들이 어려움을 겪는 문제가 바로 그런 부분이다. 평가기관에서 10억원으로 평가했다면 10억원을 주는 것이 제도의 취지에 맞을 것이다.

▶사회=최악의 취업난에도 불구하고 중소기업들은 구인난을 겪고 있다. 이에 대한 해소책이 없겠는가.

▶김 교수=호서대의 경우 연말이면 창업보육센터 입주기업으로부터 기부금을 거둬 학생들에게 장학금으로 나눠준다. 장학금을 받은 학생들은 그 기업에 인턴사원 등으로 실습을 해야 하는 조건이 붙는다. 그런데 이 제도가 기업으로부터 좋은 반응을 얻고 있다. 졸업생들이 중소기업에 들어가면 거의 대부분 못 견디고 나오는 반면 인턴 등으로 경험이 있는 학생들의 이직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박 사무총장=결국은 대학이 산업계에서 필요로 하는 사람을 양성하는 것이 관건이다. 요즘은 대학도 많이 바뀌었다. 경북대는 만도기계와 기업에 맞는 프로그램을 만들어 취업시키는 공학교육과정 지원사업을 벌이고 있다. 매년 30~40명씩 만도기계로 취업하고 있어 학생이나 기업이 모두 만족하고 있다.

▶김 교수=핀란드 울루에는 노키아 공장이 있는데 협력업체 30여개가 몰려 거대한 공단을 형성하고 있다. 이 공단 한가운데에 대학이 세워졌다. 교수가 10명이고 학생은 공단에 근무하는 직원들이다. 노키아에서 직접 전문가들이 나와 강의를 한다. 5년 정도 지나니까 완벽한 프로그램이 만들어졌다. 엔지니어만 있었다면 불가능한 아이디어들이었다. 산학이 함께할 수 있는 새로운 대학의 모습이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