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경민의 줌 인 맨해튼] ‘광속 투자 시대’ NYSE도 변해야 사느니 …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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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뉴욕증권거래소(NYSE)는 218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미국 월가의 랜드마크다. 수십 개 모니터가 달린 포스트와 아우성을 치며 주식을 거래하는 ‘스페셜리스트’라는 중개인은 월가의 상징이 돼 왔다. 컴퓨터 주식 거래 시스템이 일반화된 뒤에도 NYSE가 고집스럽게 스페셜리스트 방식을 유지해 온 것도 이 때문이다.

그러나 NYSE도 시대의 변화 앞에선 자존심을 접어야 했다. NYSE는 29일 겟코(Getco)라는 전자거래 전문회사를 ‘시장 조성자’로 지정했다. NYSE가 월가 금융회사를 대표하는 사람이 아닌 전자거래회사를 스페셜리스트 자리에 앉힌 건 이번이 처음이다. 겟코는 350개 종목의 거래를 컴퓨터로 중개할 예정이다. 성과를 봐서 앞으로 전자거래회사를 더 유치할 계획이다.

NYSE가 사람 대신 컴퓨터를 거래소에 들이기로 한 건 1000분의 1초 단위로 거래하는 ‘광속’ 투자자가 시장을 주름잡기 시작해서다. 2007년 초만 해도 NYSE에 상장된 주식 거래의 70%는 NYSE 거래소에서 이뤄졌다. 이 비중이 지난해 가을엔 37%까지 곤두박질했다. 경쟁사인 나스닥이나 배츠가 빠른 거래 속도와 저렴한 수수료를 앞세워 광속 투자자를 끌어갔기 때문이다.

NYSE도 반격에 나섰다. 2006년엔 유럽 2대 거래소인 유로넥스트와 합병해 세계 최대로 덩치를 키웠다. 2007년엔 골드먼삭스 전자거래 부서를 이끌던 덩컨 니더로어를 스카우트해 최고경영자(CEO)로 앉혔다. 니더로어는 취임하자 ‘프로젝트X’라는 개혁작업에 착수했다. 5억 달러를 들여 미국 뉴저지주와 런던에 최첨단 데이터센터를 지었다. 올해 완공할 두 센터엔 파격적인 혜택을 내걸고 광속 투자자를 유치할 계획이다. 거래 속도도 개선시켰다. 체결에 105밀리초(1밀리초=1000분의 1초) 걸리던 걸 3밀리초로 단축시켰다. 니더로어의 과감한 개혁 덕에 NYSE의 거래 비중은 지난 2월 39%로 약간 높아졌다.

니더로어가 거래 속도 단축에 매달리고 있는 건 주식보다 파생상품 거래를 겨냥해서다. 주식 거래 수수료는 과당경쟁으로 수익성이 떨어졌다. 대신 파생상품에서 블루오션을 찾겠다는 것이다. NYSE 거래소에서도 한국거래소처럼 중개인을 구경할 수 없게 될 날이 멀지 않았다.

정경민 뉴욕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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