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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10대산업 키우자] 10. 기로에 선 IT사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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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자동차가 20세기의 대표산업이었다면 정보기술(IT)산업은 단연 21세기 대표산업의 선두주자다.

컴퓨터와 정보통신 기술을 결합시킨 IT는 경제구조와 생활상을 바꿔가며 무한한 가능성을 열어가고 있다. 한국 경제 도약의 키보드로 꼽히는 IT산업의 실태와 발전전략을 진단한다.

1980년대 말~90년대 초 미국 마이크로소프트(MS)사와 애플사간에는 전쟁을 방불케 하는 PC표준 경쟁이 벌어졌다. 여기에서 이긴 MS사는 지난해 제품 1백원어치를 팔면 41원이 순익으로 남는(매출액 순이익률 41%) 초우량 기업이 됐지만, 패배한 애플사는 퇴출위기와 싸우며 근근이 회사를 꾸려가고 있다.

이동통신도 마찬가지다. 90년대 중반까지 선두주자였던 미국 모토로라는 유럽방식(GSM)이 사실상 세계표준이 되면서 핀란드 노키아에 추월당했다. 노키아의 시장점유율은 지난해 3분기 31.4%에서 4분기에는 33.9%로 높아진 반면, 모토로라는 14.1%에서 12.7%로 낮아져 두 회사간 격차가 갈수록 벌어지고 있다.

세계표준을 잡느냐, 못잡느냐는 IT업체의 생사가 걸린 문제다. '승자가 모든 걸 거머쥐는(the winner takes it all)' 시장구조 때문이다.

삼성경제연구소 고정민 수석연구원은 "국내 IT산업은 생산력과 응용기술은 세계적 수준이나, 핵심.원천 기술은 크게 부족한 상태" 라며 "앞으로 3~4년 안에 표준화 주도그룹에 끼느냐, 못끼느냐가 판가름날 것" 이라고 말했다.

◇ 치열한 표준화 경쟁〓1863년 남북전쟁 당시 링컨 미 대통령은 철로의 간격을 남부표준(5피트)과 다른 4피트8. 5인치로 결정했다. 철도가 물건을 옮기는 중요한 수단이던 당시 링컨은 이 결정 하나로 미국 전역의 물자가 남부로 들어가는 것을 차단, 북군의 승리를 유도할 수 있었다.

그로부터 1백50년이 지난 요즘 IT산업에서는 비슷한 일이 날마다 일어난다. 경쟁 관계였던 소니와 필립스는 CD를 개발하며 자신들의 기술이 세계표준이 되도록 하기 위해 협력의 길을 택했고, 업계 정상인 MS와 비자카드는 온라인 쇼핑 보안 시스템을 공동 개발하고 있다.

PC의 '윈텔(MS의 윈도+인텔의 펜티엄)' 에 맞서 IBM.애플.선마이크로시스템스가 연합전선을 구축하고 있는 것도 한 예다.

표준 경쟁에서 이기기 위한 최대 무기는 말할 것도 없이 핵심.원천 기술력이다. 기술력이 부족한 국내 기업들은 아직도 외국기업에 로열티를 내고 필요 기술을 사 쓰고 있다.

생산량이 세계 최고라는 VCR의 경우 여전히 물건값의 6~8%에 해당하는 로열티를 일본 JVC사 등에 내고 있고, 디지털비디오디스크(DVD)는 소니.필립스 등에 12% 이상의 로열티를 주고 있다. 휴대폰도 97년부터 2000년 상반기까지 미 퀄컴에 지급한 로열티만 2조5천억원이 넘는다.

IT제품의 경우 표준화는 몇개 기업이 시장을 장악하도록 만든다. 제품이 표준화하면, 생산량이 커질수록 이익과 효용이 덩달아 커지는 '수확체증의 법칙' 이 가능해지기 때문이다. PC 운영시스템 시장은 MS, 마이크로프로세서 시장은 인텔의 손안에 있다.

라우터(컴퓨터 네트워크 핵심 장비)시장은 미 시스코사가 80% 가량을 차지하고 있다. 이동통신 단말기는 노키아.모토로라.에릭슨 3개사가 전체 시장의 60% 가까이 점유한다.

◇ 기로에 선 국내 기업〓IT산업의 환경은 좋은 편이다. 지난해 말 인터넷 이용자수가 2천2백만명, 무선 인터넷 사용자수도 1천5백만명에 달하는 등 세계 최고 수준의 정보 인프라 국가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미래가 밝지만은 않다. 당장 내수.수출이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인구 1백명당 휴대폰 가입자가 57명이고, PC 보급률은 가구당 66%에 이를 정도로 내수 시장이 포화 상태다. PC 수출은 지난해 11월 이후 마이너스 성장을 계속하고 있으며, 모니터.액정표시장치(LCD) 등의 가동률도 지난해 말의 60~70% 수준으로 떨어졌다.

이런 단기적인 굴곡을 헤쳐나갈 돌파구인 핵심.원천 기술 확보와 이를 통한 표준화에는 더욱 문제가 많다. 국내 기업.연구소의 연간 특허출원 건수는 8만건이 넘지만 그중 국제표준 제안은 한두 건에 그칠 정도로 핵심.원천 기술력이 떨어진다. 또 KS표준 중 국제표준화기구(ISO) 규격에 맞는 것은 20%도 안될 정도로 국제표준에 대한 인식이 부족하다.

전문가들은 "내수 시장의 급속한 성장이나 PC.모니터 등 일부 제품의 수출 호조에 더 이상 의존해선 안된다" 며 "3~4년 안에 핵심 기술을 확보해 표준화에 성공적으로 동참하느냐, 또는 글로벌 마케팅을 통해 세계적 브랜드 파워를 갖추느냐의 여부가 국내 IT산업의 성공 또는 실패를 결정하게 될 것" 이라고 말했다.

서익재 기자

도움말〓고정민 삼성경제연구소 수석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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