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 피델리티 "경기보다 기업가치 장기투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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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8면

지난해 가을 전세계 피델리티 인베스트먼트의 이동통신 서비스.단말기 담당 기업분석가들이 한자리에 모였다.

2001년 이동통신시장 전망을 놓고 격론 끝에 이들이 내놓은 결론은 주요 증권사들의 예측보다 올해 세계의 이동통신시장이 훨씬 위축될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었다.

이에 따라 피델리티의 펀드 매니저들은 곧바로 보유 중이던 이동통신 주식을 팔아 치워 세계적인 이동통신 주가 하락에 대비할 수 있었다.

이동통신주에 보랏빛 전망 일색이던 당시 피델리티가 이처럼 과감히 승부수를 던진 것은 세계 시장에 대한 독자적인 분석 능력을 갖췄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1946년 1천3백만달러의 자산으로 시작한 피델리티는 현재 1조달러를 운용하는 세계 최대의 자산 운용사로 성장했다.

이 회사 아시아.태평양 지역본부의 케이스 퍼거슨 운용본부장(CIO)은 "피델리티의 성공은 확고한 투자 원칙과 광범위한 분석 능력 때문" 이라고 말했다.

◇ 투자자 이익 우선주의〓피델리티는 줄곧 독립적 자산 운용사로 성장하면서 한눈을 팔지 않았다. 재벌이나 은행, 증권회사를 대주주로 받아들이면 수익률을 우선해야 하는 펀드 운용 원칙이 흐트러질 수 있다는 창업자(에드워드 존슨 2세)의 철학 때문이다.

피델리티 펀드 매니저들은 자체적인 기업 분석가들의 보고서를 기준으로 투자하고 있다. 퍼거슨 본부장은 "증권사들의 기업 분석 자료는 내부 이해관계로 인해 왜곡될 수 있기 때문에 참고만 한다" 고 설명했다.

◇ 저평가 기업 골라 선별 투자〓피델리티는 경기보다는 기업의 가치에 따라 투자하는 상향식(Bot tom-Up)투자 기법으로 유명하다. '월가의 전설' 이라는 피터 린치 피델리치 고문은 그의 저서 『전설로 남은 월가의 영웅』에서 "경기가 좋지 않을 때가 오히려 좋은 주식을 싼 값에 살 수 있는 절호의 기회" 라고 강조했다.

이같은 투자 철학은 피델리티 펀드가 매년 지수 상승률을 웃도는 수익률을 거두며 안정적으로 운용되는 밑거름이 되고 있다. 피터 린치가 운용했던 마젤란 펀드의 경우 다우지수보다 연 20~30%포인트 정도 높은 수익률을 올렸다.

피델리티 펀드 가입자들은 평균 2~3년 이상, 연금 펀드의 경우 10년 이상씩 돈을 묻어두고 있다. 이는 펀드 매니저에 대한 신뢰없이는 불가능한 일이다.

◇ 독자적 분석 능력〓피델리티의 '상향식' 투자는 미국.영국.일본.홍콩 등에서 활동하고 있는 1백70명 가량의 기업 분석가들이 뒷받침하고 있다. 기업 분석가 생활을 평균 7년 정도 거쳐야 올라가는 펀드 매니저까지 합하면 3백50여명의 기업 분석 인력을 갖추고 있다.

이들은 탐방을 통해 저평가된 기업을 발굴하는 데 주력하고 있다. 피델리티 일본지사에서 한국 주식을 담당하는 정호근 펀드 매니저는 한달에 일주일 정도 한국에 와 15~20개 기업을 방문하고 있다. 기업 탐방 결과는 피델리티 전산망에 입력돼 피델리티 펀드 매니저들의 투자 참고 자료로 활용되고 있다. 정씨는 "경기 동향은 잘 모르지만 투자 기업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다" 고 말했다.

◇ 높은 도덕성〓이 회사의 리처드 웨인 법률 고문은 "피델리티는 미국 외에 25개국에서 영업하고 있는데 법에 조금이라도 어긋나면 명성에 치명적 손상을 입을 수 있다" 면서 "법을 따라야 고객들도 신뢰하고 금융회사의 발전도 가능하다" 고 밝혔다.

이를 위해 피델리티는 전세계에 40여명의 준법 감시인을 두고 있으며 매일 1만5천회 이상 펀드 운용이 내부 규제에 맞는지 여부를 자동적으로 추적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홍콩〓정재홍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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