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너리티의 소리] 가출 청소년과 대안학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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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금 우리나라 청소년 문제 중 가장 심각한 것이 가출 청소년 문제다. 청소년들의 범죄와 윤락, 성매매(원조교제)가 대부분 가출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이다.

한국청소년선도회는 1993년부터 문화관광부 지원으로 1만1천5백60명의 가출 청소년들을 찾아 선도하면서 가정과 학교생활에 적응하지 못하고 집을 나온 청소년들을 수용해 재교육할 수 있는 대안(위탁)학교와 국가가 대리부모 역할을 할 수 있는 법이 꼭 있어야만 근본적인 선도가 가능하다고 판단, 95년부터 세미나 개최 등을 통해 누차 그 필요성을 제기해 왔다.

우리 단체가 95년 전국 중.고교를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를 보면 가출 청소년 문제가 얼마나 심각한지를 금방 알 수 있다. 해마다 12만명 정도의 청소년들이 가출하고 이 가운데 7만명 가량이 자퇴나 퇴학 등으로 학교에서 밀려나오고 있다. 이들 가운데 상당수가 유해 환경에 빠져 죄를 범하거나 윤락행위를 하게 된다.

가출 청소년 문제는 단순히 청소년 문제로만 끝나지 않는다는 점에서 더욱 심각하다. 성인이 된 뒤엔 오히려 더 큰 문제를 불러일으키는 것이다. 생활 무능력자로 전락해 문제 가정을 만드는가 하면 자식 역시 문제아로 자라게 하고 국가적 손실을 가져오는 만년 실업자가 될 공산이 크다.

따라서 가출 청소년을 조기에 찾아 선도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일이며 가장 성과가 큰 청소년 선도사업이기도 하다. 반면 여기에는 위험 부담이 크고 경비도 많이 들어간다. 하지만 그동안 청소년 선도활동으로 많은 청소년들이 구제됐고 결과적으로 가정과 학교 또한 혜택을 받았으므로 그 성과는 돈으로 따질 수 없을 만큼 크다고 볼 수 있다.

그럼에도 청소년 선도활동에 대해 색안경을 끼고 보거나 시민단체로부터 받는 혜택은 모두 공짜라야 한다는 사람들을 볼 때 민간단체의 발전이 아직도 요원하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 없다. 한때 세상을 발칵 뒤집어 놓았던 신창원의 범죄행각을 비롯해 적잖은 범죄가 청소년 시절의 가출로부터 시작된 경우를 흔히 보게 된다. 그래서 가출 청소년들은 떠돌아 다니는 폭탄과 같은 존재다.

지금까지 우리나라에선 바늘만한 우범자를 황소만한 강도가 될 때까지 방치했다 범죄가 발생하면 뒤늦게 범인을 잡느라 야단법석을 떨어왔다. 정부가 이제서야 공립 대안학교를 세우기로 했다고 하니 그나마 다행이다.

그러나 공립 대안학교가 성과를 거두기 위해선 이를 단순히 학교에서 잘린 아이들을 재교육하는 학교정도로만 생각해선 안된다. 무엇보다 청소년 범죄 예방과 복지증진 차원에서 철저한 연구.검토가 선행돼야 할 것이다.

제대로 된 대안학교를 세우려면 교육인적자원부의 힘만으론 부족하다. 청소년 육성과 무관하지 않은 문화관광부는 물론 법무.노동.여성부와 가정법원.청소년보호위원회.검찰청.경찰청.청소년단체.일선학교 등이 머리를 맞대고 좋은 방안들을 찾아내야 한다.

이들 부처나 기관.단체로부터 청소년 문제에 경험이 많은 인사들을 추천받아 '대안학교 설립추진위원회' 같은 기구를 구성하고 학교의 위치와 규모, 운영 방법, 교과목, 입학 기준 등을 정하는 게 옳다고 본다.

특히 대안학교는 일반학교에서 낙오한 학생들만 가는 곳이 아니라 다양하고 전문적인 기술교육을 시키는 특수학교로 만들어야 한다. 졸업 후 배운 기술로 사회생활을 할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가정.학교에 적응하지 못하는 학생이 많을 것이므로 기숙사제도를 원칙으로 해야 하며 대학 진학의 길도 열려 있어야 한다.

대안학교를 세우는 것은 결코 간단한 일이 아니다. 무작정 외국의 선례를 모방한다든지 여론이나 업적만을 의식해 임시방편으로 일을 추진한다면 국가 재정만 낭비할 뿐 큰 성과는 거두지 못할 것이다. 이렇듯 대안학교 설립은 중요하고 시급한 국가 과제인 만큼 재원이 없다면 정부가 '청소년육성세' 를 만들어서라도 꼭 추진해야만 한다.

박부일 한국청소년선도회 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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