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런 삶] "닫힌 마음 그림으로 열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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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5일 오후 1시 의정부시 고산동 의정부교도소 담장. 길이 1백50m.높이 4.5~7m의 철옹성 담벼락엔 하늘.구름.숲.꽃.개울 등 우리 산하의 사계(四季)를 표현한 그림이 파노라마 처럼 펼쳐져 있다.

담장 한켠에선 50대 초반의 한 중년 남자가 허름한 청바지 차림에 푸른색 작업모를 눌러 쓴채 구슬땀을 흘리며 붓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다.

삼육의명대학 임종성(林鍾成.53.아동미술학)교수. 그는 무채색으로 어둡고 위압적인 분위기를 자아내던 이 교도소 담장을 미술품 전시장쯤으로 착각할 정도로 탈바꿈시켰다.

"다른 이유는 없어요. 그저 아름다운 세상을 만들어 가기 위해서죠. "

그는 지난해 4월초부터 1년 넘게 이 일에 매달리고 있다. 누가 시킨 것도 아니고 돈을 받고 하는 일도 아니다. 절망이 서린 교도소 담벽을 희망의 공간으로 바꿔보기 위해 스스로 나선 것. 林교수는 이번 주말까지 이 그림을 완성할 예정이다.

"한사람이라도 그림을 보면서 닫힌 마음을 열 수 있다면 그만한 보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

그는 지난 1년간 휴일도 반납하고 강의가 비는 시간이면 으례 교도소 담장으로 달려나가붓을 들었다. 더위와 추위에 싸우며 야외에서 캔버스가 아닌 대형 담장위에 올라 5시간여동안 그림을 그리는 일은 중노동에 가까웠다.

林교수는 그림이 비바람에 훼손되지 않고 장기간 보존이 가능하도록 하기위해 애를 썼다.

각각의 색깔이 다 있는 수성페인트를 마다하고 빨강.노랑.파랑.흰색.검정.녹색 등 6가지 색깔만 나오는 유성페인트를 사용했다. 원하는 색깔이 없으면 작업현장에서 어렵게 색깔을 만들어 가며 그렸다. 이같은 노력으로 이 벽화는 7~10년동안은 별다른 보수작업을 거치지 않고도 잘 보존될 수 있게됐다.

대학측에서도 林교수의 뜻을 이해하고 1천여만원어치에 이르는 페인트값 등 재료비를 보조해줬다. 때로는 제자들을 불러내 현장학습장 및 봉사활동에 참여하는 기회로 활용하기도 했다.

강귀근(姜貴根.56)의정부교도소장은 "교도소의 삭막한 분위기를 부드럽게 바꿔 가족과 재소자들에게 위안을 심어줘 고맙기 그지 없다" 며 5일 삼육의명대학 관계자와 林교수을 초청, 감사의 뜻을 전하기도 했다.

이 자리에서 林교수는 "담장의 그림에 담긴 꿈과 사랑 그리고 삶에 대한 희망이 재소자들과 면회오는 가족들의 마음 속에 전달되길 바란다" 고 말했다.

지난 1996년부터 시조사.삼육대 등 6곳의 담장에 대형 벽화를 무료로 그려주고 있는 林교수는 오는 25일부터는 최전방 민통선내에 있는 향로봉 인근 군부대의 40m짜리 담장에도 풍경화를 그려줄 계획이다.

林교수는 "많은 미술인들이 우리 생활주변에서 늘 접할 수 있고 도시의 분위기를 문화적으로 가꿀 수 있는 대형 벽화그리기 봉사에 보다 좀더 관심을 가져줬으면 좋겠다" 고 덧붙였다.

전익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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