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취재] 국책사업 백서 만들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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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일단 착공만 하면 공사비가 얼마나 불어나든, 완공 후 만년 적자에 시달리든 책임지는 사람이 없다. 대다수 대형 국책사업의 현주소다.

사업에 들어가기 전에는 '예비 타당성 조사' 라도 하지만 정작 공사에 들어가면 별다른 사후 평가제도가 없기 때문이다. 국무총리실 심사평가나 감사원 성과감사가 있지만 엉터리 계획이나 부실 공사의 책임을 묻는 데는 '솜방망이' 라는 지적이다.

감사원은 지난해 인천국제공항의 총사업비가 당초 3조4천억원에서 7조9천억원으로 늘어난 경위를 감사해 73건의 예산 낭비.부당 업무처리 사례를 적발했다. 그러나 징계받은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 고의성을 입증하기 어려운 데다 퇴직하면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규정 때문이다. 징계 시효도 2년밖에 안된다. 2년 이상을 끄는 국책사업은 사실상 사후에 책임을 물을 수 없는 것이다.

감사원이 1998~2000년 감사한 15개 대형 국책사업의 총사업비는 대략 70조원이 넘지만, 이 중 위법.부당하게 산정된 부분을 적발해 시정한 것은 7백84억원에 불과했다. 이래서 무리한 공사라도 '시작하고 보자' 며 밀어붙이는 사례가 되풀이된다. 정치권 '외풍' 도 막을 길이 없다.

예산감시네트워크 윤영진 대표는 "국책사업의 부실을 되풀이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선 사후평가를 제도화해야 한다" 며 "이를 위해 선진국처럼 추진배경과 공사과정, 업무별 책임자 등을 꼼꼼히 기록한 백서(白書) 발간을 의무화해야 한다" 고 강조했다.

만년 적자 운영도 문제다. 공공시설 이용료는 원가에도 못미치는 경우가 많다. 경부고속철을 건설하고 있는 고속철도공단의 빚은 3조4천억원에 달한다. 수익은 한푼도 없는데 올해 갚아야 할 원금.이자만 5천억원이다. 2단계 공사가 끝나는 2010년엔 빚이 10조원으로 늘어난다.

김경환 서강대 경제연구소장은 "대형 시설물을 운영하는 기관이 적자를 내면 결국 재정으로 메워야 해 공단이나 고속도로를 이용한 적이 없는 국민에게도 부담이 돌아온다" 며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이용료를 현실화하고, 운영을 민간에 맡기는 게 바람직하다" 고 지적했다.

기획취재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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