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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보다 더 심한 스트레스는 노후불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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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는 재테크나 투자 관련 강의를 많이 하는 관계로 신문기사나 인터넷 뉴스를 보다가 활용하기 좋은 기사나 자료가 있으면 따로 저장해 놓는 습관이 있다.

막연하게 누구나 아는 저출산과 평균 수명 증가로 인한 노후대비와 함께 은퇴설계에 대한 중요성은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침이 없어서 늘 입에 달고 살 정도로 강의주제로 사용하고 있지만 아직까지도 실제 피부에 와 닿아서 퍼뜩 놀란 눈을 하거나 심란해 하는 수강생을 보기가 쉽지 않다.

“알기는 아는데요…지금 현재 제 상황에서 뭘 어쩌겠어요? 쥐꼬리만한 월급에서 생활비에 얘들 교육비만 한달에 100만원이 훨씬 넘게 나가고 있고 대출이자 내다보면 노후대비요? 다음달 대비도 힘들어요…배부른 소리 마쇼..”

이런 볼멘 소리만 듣는 경우가 많은 것이다.하지만 1955년에서 1963년까지 태어난 베이비붐 세대들이 올해 딱 55세가 되면서 최근에는 은퇴나 노후대비에 대한 기사나 뉴스가 부쩍 늘었으며 신문사마다 혹은 방송사나 인터넷 사이트마다 기획꺼리로 제일 많이 활용하는 것이 바로 ‘은퇴준비’라는 주제라고 한다.

실제 최근에 언급된 몇 몇 기사만 발췌해도 여러 개를 볼 수 있는데 첫 번째로 한국사람들의 노후 대비에 대한 두려움을 알 수 있는 통계기사이다.

한국인은 선진국은 물론 한국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나라의 사람들보다 노후에 대한 두려움이 더 큰 것으로 나타났다는 기사가 있었다.
어쩜 그렇게 남에게 지는걸 싫어하는지 전 세계에서 가장 빠른 속도로 고령화가 진행되고 있지만 대부분이 노후 대비를 충분히 못하고 있다는 인식은 공통된 고민인 것 같다.

국민연금으로는 노후준비를 완벽하게 했다고 할 수가 없고 위에서 언급했듯이 아이들 양육비와 교육비에 대한 부담은 증가하고 물가 상승률은 어디가 끝인지 모를 정도로 올라만 가고 있다.불과 10여년 전에 몇 천원으로 보던 영화를 이제는 3D영화의 경우에는 만원이 훌쩍 넘는 금액으로 봐야 하니 말이다.데이트를 하려고 해도 저녁식사하고 영화 한편 보고 간단히 차 한잔 내지는 맥주 한잔 마시고 들어간다고 가정하면 거의 5만원이 넘는 금액이 든다.

HSBC그룹은 최근 아시아 7개국의 35∼65세 성인 남녀 3563명(한국 532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한국인이 ‘현재 재무계획에서 은퇴자금 부족을 가장 두려운 위협’으로 꼽은 비율은 61%로 싱가포르(42%)는 물론 한국보다 소득수준이 낮은 말레이시아(38%), 인도(26%), 중국(26%)에 비해서도 크게 높았다고 밝혔다. 반면 한국과 더불어 아시아의 4마리 용으로 불리는 홍콩과 대만인들은 은퇴자금 부족으로 인한 두려움이 각각 20%와 18%로 크게 낮았다.

한국사람 10명 중에 6명이 은퇴에 대한 불안감을 위협으로 까지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게다가 한국인 응답자 중 79%는 현재 저축 수준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 통계를 보더라도 한국인은 은퇴를 대비한 저축을 제대로 못하고 있는데 2008년 한국의 가계저축률은 2.5%로 미국의 2.7%보다 이미 낮은 상태이다.우리 부모님 세대의 30%에 육박했던 전세계에서 유래가 없는 저축률은 이젠 온데 간데 없고 5%도 안되는 저축을 하고 있다는 것이 여간 서글프게 느껴진다.

우리나라는 2000년대 이후 저금리가 지속되면서 시중은행의 부동산담보대출이 큰 폭으로 늘고 이와 함께 주택가격도 급등하면서 은퇴 후 자산의 부동산으로의 쏠림 현상이 심각한 문제로 대두되는데한국노동연구원에 따르면 은퇴자의 1인당 평균 순자산은 1억242만9000원으로 이 중 91%인 9365만 원이 부동산 순자산이다. 금융순자산은 1인당 770만 원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전체 자산중에서 부동산이 90%가 넘는다는 것은 쏠림 정도가 아니라 맹목적인 자산형성인 것이고 특히 은퇴자를 대상으로 한 통계이기 때문에 은퇴준비의 비 정상성을 여실히 알 수가 있겠다.

주택을 담보로 노후생활자금을 지원받는 역모기지(주택연금)는 아직 활성화 되지 않아서 주택금융공사가 2007년 7월부터 주택연금을 실시하고 있지만 3월 23일 현재 총누적 가입자는 2600명에 불과한 실정이니 그냥 부동산이란 자산을 아무런 추가 기회이익을 포기한 채 엉덩이 밑에 깔고 앉아있는 형국이 아닐 수 없다.

하지만 다른 통계를 살펴보면 과연 우리나라 국민들의 부동산에 대한 짝사랑을 여실히 알 수 있는데 국민의 약 30%는 부자가 되려면 부동산에 투자해야 한다는 인식을 하고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가 나왔다.

닐슨컴퍼니코리아가 성인 남녀 1천명을 대상으로 벌여 3월 18일 발표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부자가 되기 위한 가장 좋은 방법을 묻는 항목에 응답자의 28.3%가 부동산 투자를 꼽았다.

다음으로는 전문직 종사 22.7%, 금융 재테크 17.2%, 개인 사업 12.0%, 복권 10.4% 등이었으며 절약 등 건전한 재무 습관을 꼽은 응답자는 8.5%에 그쳤는데 부동산에 대한 짝사랑은 연령대별로 19~29세 20.9%, 30대 29.9%, 40대 37.5%, 50대 39.7%로 나타나서 은퇴준비를 가장 시급하게 해야할 50대부터 역순으로 부동산을 중요한 자산으로 꼽고 있다.

물론 내집마련을 통한 부동산 자산의 형성이 가장 안정적인 자산의 구성이 되는 것이고 주거의 안정성이 우리 인생의 가장 중요한 실천덕목으로 인식되고 있는 것을 굳이 부정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노후준비와 은퇴자금 마련을 ‘위협’이라는 단어를 쓰면서까지 다른 나라 국민들보다 제일 두려워 하면서 실제로는 부동산에만 자산을 묶어 둔다는 것은 머리와 행동이 따로 가는 것이 아닐까 싶다.

이런 상황을 제대로 파악하지 못한채 한국 여성들이 일본의 여성들보다 남편 은퇴후 더 낙관적이라는 다른 통계가 나왔다.

은퇴 후에 어찌어찌 연금도 나올테고 우리 남편이 알아서 우리 부부의 노후준비와 아이들의 교육 및 결혼 자금까지는 준비할 수 있겠지라는 막연한 기대감이 크다는 것이다.

지난 3월 15일 세계적인 자산운용사 피델리티의 은퇴백서 '뷰포인트'에 수록된 '한 • 일 여성의 은퇴 준비에 관한 인식조사'에 따르면 한국 여성은 은퇴 후 인생이 즐거울 것이라는 응답이 37.1%에 달해 일본 여성(19.4%)보다 두 배 가까이 많았다.

은퇴 후 연금 수령액도 한국 여성의 47.1%는 '약간 줄거나 현재 정도는 나올 것'으로 예상한 반면 일본 여성의 63.6%는 '수령액이 대폭 감소하거나 전혀 못받을 수도 있을 것'으로 응답했다.

또 남편이 사후를 대비해 가족의 생활자금을 준비하고 있다고 생각하느냐는 물음에 대해서도 한국 여성은 62.4%가 '그렇다'고 답했으나 일본 여성은 29.2%만 '준비하고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어떻게 되겠지? 뭐..아 우리 부모님들 세대에서도 언제 은퇴준비나 노후 자금을 마련하며 살았나?’

자기 합리화를 하자면 한도 끝도 없는 것이다.죽기전에 가봐야 할 여행지 100군데나 죽기전에 해야 할 일 100가지,죽기전에 읽어야 할 도서 100권 보다도 더 중요한 것은 죽기전에 하지 말아야 할 것 100가지가 있다면 가장 큰 것이 ‘은퇴준비 소홀에 대한 후회’라는 것을 반드시 명심하기 바란다.

매월 500만원씩 버는 사람보다 매월 200만원 버는 사람이 저축이나 투자를 더 하는 모습을 본 적이 있다.수입의 많고 적음을 떠나서 물론 생활 수준은 차이가 나겠지만 과연 현재의 수입에서 추가로 더 저축이나 투자를 할 자금이 없는지를 심각하게 고민했으면 한다.

그 여력이 바로 독자 여러분의 은퇴준비에 밑거름이 되는 씨앗들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서기수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