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류하는 문화재정책] 中. '문화재기금' 마련 시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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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시간을 다투는 상황에선 마땅히 쓸 돈이 없다. "

대규모 건설 공사 중에 문화재가 발굴되는 경우, 중요 문화재를 빨리 보수해야 할 때, 문화재 구역의 사유지를 매입해야 할 상황 등에서는 정작 이에 투입할 만한 비상자금이 없다는 소리가 나온다.

1999년 12월 서울 풍납동에서 백제시대 중요 토기가 발견돼 주목을 끌었던 풍납토성의 경당지구 보상문제는 1년이 지난 뒤에야 윤곽이 잡혔다. 이듬해 5월 정부의 무대책에 항의하는 지역주민들 일부가 문화재 매장 지역을 훼손하는 일이 벌어지자 정부는 대통령까지 나서 사태를 무마하기에 급급했다.

같은 풍납토성의 미래마을과 외환은행 부지에 대해서 문화재위원회의 보존결정이 내려진 게 올해 2월이지만 주민들에 대한 보상문제는 아직까지 매듭을 짓지 못한 상태다.

***빠듯한 예산으로 엄두못내

이는 문화재 예산이 정부 회계상의 절차에 따라 1년에 한 번 책정되기 때문이다. 따라서 풍납토성의 예처럼 개발과 보존을 둘러싸고 지역주민의 이해와 문화재정책이 첨예하게 대립할 때는 돈이 없어 마땅한 대책을 세우지 못하는 형편이다.

이런 상황에서 거론되는 대안이 '문화재 보존 기금' 설립이다. 중앙박물관의 한 관계자는 "개발에 따르는 사유지 매입 등에 대해 보상비용을 마련하는 것은 현재 예산규모로는 불가능하다" 며 "외국에서도 문화재 보존을 위해 기금을 설립하고 있는 점을 감안해 우리도 이를 도입해야 하며 그러지 못하면 근본적인 문화재 보존정책을 마련하기 어렵다" 고 말했다.

***외국처럼 별도기금 있어야

전문가들은 ^장기적인 계획에 따른 문화재 보호 ^개발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보상금 마련 ^정비가 시급한 문화재에 대한 보수 등을 위해서는 기금을 만드는 게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말한다.

실제 문화재청의 올해 예산은 2천7백25억원이다. 이 정부 들어 문화부문이 차지하는 예산이 늘었다곤 하나 아직 전체 예산의 1.24%인 1조2천4백여억원 정도고 문화재 관련 예산은 이 가운데 겨우 21.9%를 차지하는 데 그쳤다.

이같은 예산으론 지방자치단체의 개발 붐에 따른 문화재.천연기념물 보호가 불가능하다는 게 일반적인 지적이다. 특히 '강화 갯벌 및 저어새 번식지' '신두리 해안 사구(砂丘)' 등 천연기념물로 지정됐거나 지정을 추진 중인 지역에선 주민들이 사유재산권 규제에 대해 반발하고 있어 하루빨리 대책을 마련해야 하는 입장이다.

문화재청의 한 관계자는 "기금 등을 점차 철폐하는 게 요즘의 추세이긴 하지만 문화재 보존은 또다른 차원에서 생각해야 한다" 며 "문화재 예산을 크게 늘리는 게 불가능하고 지자체의 활발한 지역개발로 인해 문화재 보존이 시급한 점을 감안할 때 기금 설립 외에 달리 마땅한 방법을 찾기 힘들다" 고 말했다.

영국에서는 '유산복권기금' 을 설립해 국민복권 수익의 16.7%를 문화유산 및 관련 사업에 쓰도록 법령에 명시했으며 미국도 '역사유적보존법' 에 근거를 두고 '역사유적보존기금' 을 설립해 운용하고 있다. 문화재 분야는 아니지만 국내에서도 올해 1월부터 '자연환경보전법' 에 따라 개발사업자에게 '생태계보전협력금' 을 부과해 1백억원을 거둬들일 예정이다.

***기부금 稅공제 등 제도 필요

이에 따라 문화재부문에서도 정부 출연금을 기초로 해 각종 개발 공사에 따른 부담금을 부과하는 방식으로 기금을 마련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이밖에도 문화재 관람료에서 일정액을 부과해 모금하거나 일반 국민이나 기업체 등이 문화재 보존사업과 발굴사업 때 기부금을 낼 수 있도록 법제를 정비하고, 문화유산에 대한 개인의 기부금에는 소득공제 혜택을 부여하는 방법 등을 검토해야 한다는 제안이 나오고 있다.

유광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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