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년스타 '노인 밴드' 음악봉사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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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7면

지난달 29일 오후 서울 관악구 봉천동의 한 4층 건물 주변. 갑작스럽게 나는 웅장한 음악소리가 나른한 오후의 정적을 깬다.

소리가 흘러나오는 지하실에서는 백발이 성성한 노인들이 색소폰.기타.드럼 등을 흥에 겨워하며 연주하고 있다. 달걀 담는 용기를 이어붙여 임시로 방음벽을 만든 볼품없는 연습실이지만 음악의 리듬은 결코 아마추어 수준이 아니다.

때로는 눈을 지그시 감고, 잠시 후에는 크게 손을 내젓는 지휘자의 몸짓에도 연륜이 묻어난다.

이 실력파 실버악단의 악단장은 김인배(金仁培.70)씨. 1993년까지 KBS 라디오 악단장을 지냈다.

金씨는 "음악으로 관객을 즐겁게 해주는데 나이가 무슨 상관이냐" 는 말로 밴드 소개를 시작했다. 60~70대 노인 18명으로 구성된 이 밴드의 이름은 '청송(靑松) 올스타스' . '젊고 활기차게 살아가는 왕년의 스타들이 모였다' 는 뜻을 담고 있다.

이들은 대부분 과거 방송국 악단이나 미8군 등에서 평생 대중음악 연주를 해왔다고 한다.

그 중에는 지금도 선글라스에 금목걸이, 형광색 티셔츠를 입고 다니는 끼 넘치는 할아버지도 눈에 띄었다.

악단이 결성된 것은 지난해 11월. 뜻깊은 일을 해보자는 뜻에서 이심전심으로 의기투합했다.

결성 직후 서울 은평문화회관에서 무료공연을 한 것을 시작으로 그동안 장애인 시설.복지관.거리 축제 등을 다니며 음악 봉사를 계속해 왔다.

지난달에는 서울시청 마당에서 직장인들을 위한 연주회를 열어 앙코르를 여러번 받았다.

이 연주회를 관람했던 정준호(40.회사원)씨는 "연주를 들으며 영화 '친구' 처럼 오랜만에 옛 추억에 젖을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고 말했다.

악단의 '막둥이' 이자 살림꾼인 김춘광(59)씨는 "연주인들에 대한 시선이 그리 곱지 않다" 며 "연주 봉사활동을 통해 그런 인식들을 깨뜨릴 수 있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고 말했다. 그는 지금도 가수 이미자씨의 전속 악단 단장을 맡고 있다.

단원 모두 기량에 대한 자존심이 대단하지만 결코 연습을 게을리하지 않는다.

연습이 있는 매주 화요일과 목요일에는 어김없이 연습실이 꽉 찬다. 연습실은 젊은 후배들이 자신들의 것을 빌려줘 마련했다. 대신 후배들은 대선배들의 연주법 하나하나를 놓치지 않으려는 듯 연습시간 내내 눈을 반짝이고 악기를 만지며 자리를 지키고 있다.

민요에서 가요.팝송.재즈까지 장르에 관계없이 폭넓은 연주 실력을 자랑하는 단원들이지만 가장 힘들어 하는 것은 아무래도 최신 유행곡.

바리톤 색소폰을 연주하는 최고령 단원 정창용(鄭昌龍.77)씨는 "새 주법이 손에 안 익어 애를 먹을 때도 있지만 연주할 때는 힘든 줄 모른다" 고 말했다.

그는 연습을 위해 경기도 안양에서 매주 2시간 가까운 길을 마다하지 않고 온다.

이런 鄭씨도 "연습하고 집에 갈 때 가끔 어지러울 때가 있긴 하지" 하고 허허 웃었다. 공연 의뢰 및 후원은 02-766-7417.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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