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존 승조원 부친 “선임병 지혜가 내 아들 살렸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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갑판 위에 올라왔을 때는 이미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배가 두 동강 난 건 보지 못했다. 입대한 지 두 달 열흘, 배 탄 지 불과 열흘. 이 이병은 혼란스러웠다. “바닷물에 뛰어들면 안 된다”고 한 선임병이 외쳤다. “아직 가라앉으려면 시간이 남았다!” “지금 뛰어들면 저체온증으로 죽는다!” 선임병들의 목소리가 갑판을 울렸다. 이 이병은 지시대로 구명 조끼를 입고 갑판 위에서 기다렸다.

큰 배가 다가오는 것이 보였다. 참수리호였다. 그런데 배가 다가오면서 커다란 파도를 일으키자 천안함이 심하게 흔들렸다. 배에서 떨어질 것 같았다. 갑판 위에 있던 소방호스를 붙들었다. 상관들이 “안 돼!” “오지마!” 하고 소리치며 손을 거세게 흔들었다. 배가 너무 커서 천안함과 충돌할 위험이 있다고 했다. 그러나 배는 점점 다가왔다. 함정이 자꾸 물 밑으로 가라앉았다. 마침내 참수리호가 물러갔다. 다시 갑판 위에서 구조를 기다렸다. 해경 보트가 다가왔다. 바다에 떨어질까 봐 소방호스를 잡고 내려와 구명보트에 올라탔다. 긴 밤이 지나고 있었다.

또 다른 생존자인 (익명을 요구한) A하사의 침실은 함수 부근이었다. 그날 따라 피곤해서 저녁 운동을 거르고 일찍 잠자리에 들었다. “쾅!” 폭발음에 놀라서 안경을 집어드는 순간 배가 휙 기울어졌다. 순식간에 배 바닥이 벽처럼 일어나는 것 같았다. 다급한 마음에 무조건 밖으로 나갔다. 반팔 셔츠에 반바지 차림이었지만 옷을 껴입을 시간이 없었다. A하사는 눈이 나빴다. 게다가 사방이 깜깜했다. 평소에 다니던 통로를 떠올리며 겨우 빠져 나왔다. 가는 길에 사람 형태 같은 것만 보이면 무조건 잡아서 다 데리고 나왔다.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마침내 구명보트가 왔다.

살았다고 생각한 것도 잠시. 밤바다가 덮쳐왔다. 구명보트가 출렁거릴 때마다 몸에 얼음 같은 바닷물이 닿았다. 피부가 아릴 정도로 차가운 물. ‘이래서 저체온증으로 죽는가 보구나 … ’. 누가 먼저랄 것 없이 10여 명이 서로를 주무르기 시작했다. 조금씩 몸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꼈다. 차가운 밤바다와 그렇게 싸우면서 살아 돌아왔다.

◆천안함 생존자들은=현재 경기도 성남시 국군수도병원에서 치료 중이다. 크고 작은 부상도 있지만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 증상을 보이는 경우도 있다고 한다. 현재 군 당국은 천안함 구조자들과 취재진이 접촉하는 것을 철저하게 통제하고 있다. 본지는 생존한 승조원 가족들을 통해 취재한 내용을 바탕으로 당시 상황을 재구성했다.

송지혜·심새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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