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보관함에 담아둔 꿈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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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선데이, 디시전메이커를 위한 신문"

얼마 전 한 ‘해고 전문가’의 삶을 다룬 영화를 봤다. 그의 일은 사장을 대신해 미국 전역에 있는 계열사를 다니며 당사자에게 해고 사실을 통보하는 역할이다. 영화를 보면서 최근 베이비붐 세대의 은퇴가 시작됐다는 내용을 약속이나 한 듯 우리 언론들이 기사화한 게 생각났다. 나이가 찼으면 자발적 해고를 준비하라는 신호 같아 씁쓸해진 이들과 아내들에게 공감을 일으켰는지, 주연배우 조지 클루니 때문인지 영화는 중년 여성들의 입소문을 타고 있다.

그러나 이 영화가 필자에게 인사이트를 준 키워드는 ‘해고’가 아니라 ‘꿈’이다. 영화의 한 장면. 해고 전문가의 통보를 받은 어떤 이가 분노하고 괴로워하면서 자학하기도 한다. “왜 내가 해고 대상자냐”고 물으며. 이때 해고 전문가의 어떤 얘기도 위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위로하려다가 분노만 더 키워 해고 수용에 문제가 생기거나 시간이 지체될 수도 있는 것이다.

영화에서 주인공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당신은 이 회사에 오기 전에 훌륭한 요리사가 꿈이었다고 기록돼 있다. 요리학교 동기들보다 더 큰 레스토랑에서 일하며 인정받지 않았던가. 지금부터라도 당신의 꿈을 완성시키려 도전해 보면 어떨까.” 해고 당사자는 ‘꿈’이라는 단어에 동공이 흔들린다. ‘그렇지, 나에게도 꿈이 있었는데…’. 그런 메시지를 담은 눈빛이 반짝인다.

은퇴 후 여생이 길어지면서 인생 2막이니, 3막이니 하는 말을 자주 듣는다. 일찍 퇴직하거나 은퇴를 앞둔 이들이 공통으로 생각하는 것이 먹고살 걱정일 것 같지만 아니다. 의외로 전에 품었던 꿈에 대한 향수다. 인생의 한나절을 지날 때면 문득 ‘난 지금까지 제대로 살아왔는가’에 몰입하는 순간이 온다. 중년의 최고경영자(CEO)나 직장인들을 대상으로 개인 브랜드 통합관리(PI)를 위해 인터뷰를 하다 보면 이구동성으로 하는 말이 있다. “내가 꿈꾸던 일은 이런 게 아니었어요.” 그들은 먹고사는 걱정뿐만 아니라면 여행작가·영화감독이 되고 싶다고 했고, 혹은 목수가 돼 멋진 내 집을 짓고 싶었다고 했다.

미국에는 이런 이들을 위한 사이트가 운영되고 있다. ‘천직을 찾아 떠나는 휴가 (vocationvacations.com)’라는 직업 체험 사이트다. 어린 시절 가졌던 요리사의 꿈을 실현하기 위해 다니던 회사에 휴가를 내고 사이트에서 연결해 준 레스토랑에서 실습을 해 보는 것이다. 화가의 꿈을 가졌던 이에게는 화실이, 교사의 꿈을 품었던 이에겐 학교가 연결된다. 꿈을 실습해 보며 직업을 바꿀 수 있을지 가늠해 보는 프로그램이다.

그런데 이들의 강렬한 욕망과 열정에도 실습을 통해 전직한 사람은 25% 정도라고 한다. 대다수는 다니던 회사로 돌아가 현실에 적응한다는 것이다. 25%라는 수치는 전직을 한 용기 있는 사람들의 숫자이지 그들이 그 일에 성공해 안착했는지 여부는 명확히 나와 있지 않다.

십수 년 해 온 일을 버리고 직업을 바꾼다는 것은 만만한 일이 아니다. 성공적인 전직을 위해선 내가 꾸었던 꿈이 나의 장점·특성을 잘 반영할 수 있는 것인지, 막연한 동경이었는지 분석하는 게 중요하다.

그동안 사는 것이 급해 우선 임시보관함 폴더에 저장시킨 나의 꿈을 이제라도 열어 볼 생각이라면 두 가지를 제안한다. 첫째, 다중지능(언어·대인관계·자기이해능력 등 8개 항목의 지능 테스트)을 체크해 내가 꾼 꿈이 나의 우수 성향과 잘 어울리는지 진단해 보는 것이다.

다음으론 현재의 직업에 최선을 다해 왔는지 스스로 점검해 봐야 한다. 비록 현재의 일이 꿈의 직업은 아니었을지언정 ‘선수급’이 될 만큼 치열하게 일해 왔다면 다른 일에서도 선수가 될 확률이 높을 것이다. 인생 2막도, 3막도 1막을 지낸 연장 에너지가 결과로 나타난다. 확 바꿔 봐야 속이 시원할 것 같은 사람이라면 생각해 보라. ‘나의 1막에서 나는 선수처럼 일했는가’ 하고.

유재하 UCO마케팅그룹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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