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입맛 맞는 연구만 원하는 정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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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정당한 절차를 밟아 출간된 국책연구소의 보고서가 정부 압력에 의해 배포가 금지됐다고 한다. 보도에 따르면 조세연구원의 한 연구위원이 '공적자금이 재정수지에 미치는 영향' 을 연구해 연구원 심사 등 제반 절차를 거쳐 책자로 출간했지만, 재정경제부와 청와대가 배포를 금지해 사장(死藏)됐다는 것이다.

이게 사실이라면 우리는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났다고 본다. 연구기관의 학문적 결과물은 정부의 자의적 판단이 아니라 다른 연구자들에 의해 심층적으로 분석 평가돼야 한다.

이 연구위원은 "공적자금 회수가 차질을 빚는다면 국민은 소득세 기준으로 지금보다 최고 29% 가량 더 세금을 부담해야 재정 파탄을 면할 수 있다" 고 추정했다.

그동안 공적자금은 정부의 직접 상환 의무가 없는 보증채무이므로 국가채무 산입(算入)대상이 아니라고 주장해온 정부로선 이런 추정이 매우 당혹스럽고 마음에 안들 수 있다.

정부정책에 거슬리는 연구결과는 없던 일로 덮어버리고 구미에 맞는 것만 받아들인다면 이는 군사정권 시절의 연구풍토와 다를 바가 없지 않은가. 또 현 정부가 그동안 국책연구기관의 중립성을 강조한 취지에도 정면으로 배치되는 행위라고 본다.

우리가 주목하는 다른 한가지는 1백4조원이 투입된 공적자금 등 국가보증채무가 국가채무로 전환될 가능성이 있으며, 이 경우 국민의 조세부담이 커질 것이라는 지적이다.

그동안 다른 학자들도 비슷한 주장을 해왔지만, 정부는 이를 수용하지 않고 야당과 불필요한 '국가채무 논쟁' 만 벌이고 있는 것 같아 걱정이다.

연구기관에 재갈을 물려 입맛에 맞는 연구만 원할 게 아니라, 국민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 공적자금 회수에 최대한 노력하는 게 정부가 진정으로 해야 할 일이다. 또 최악의 상황에 대비한 '비상대책' 을 마련하고 만일의 경우 국민이 받을 충격을 완화하기 위해서라도 정부는 '비관적' 연구를 오히려 장려하는 게 바람직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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