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 중사의 부인 박미선(오른쪽 사진)씨는 “신랑이 지난 주 화요일(23일)에 전화해서 불안하다고 했다. 제2연평해전 때도 그랬는데 결국 살아 돌아왔다”고 말했다. 박씨는 “제2연평해전 때도 우리 신랑 이름이 생존자 명단에 가장 늦게 떴다”며 희망을 버리지 않았다. “사고 이후 매일 신랑 옷을 끌어안고 잔다”는 그는 “남편이 꿈에 나와 춥다고 했다. 아직 살아 있다고 신호를 보내는 것 같다”고 말했다.
박씨는 “승진을 하려면 승선 경험이 있어야 한다고 해서 배를 탔는데 이렇게 됐다”며 통곡했다. “수색대원들이 산소통도 안 메고 바다에 뛰어들던데 그렇게 해서 수색이 제대로 되겠느냐”며 의문을 제기하기도 했다. 현재 평택 해군2함대 실종자 가족 숙소에 머무르고 있는 박씨는 사고 이후 아무것도 먹지 못하고 있다. 28일 오전엔 2함대 사령부 앞에서 수색작업 지연에 대해 항의하다 실신하기도 했다.
제2연평해전 당시 박 중사와 함께 근무했던 이해영(59) 원사는 “대원들과 우애가 좋고 착실한 친구다. 제2연평해전 이후에 전역을 고려하기도 했지만 아이가 생기면서 다시 배를 탔었는데…”라며 말을 잇지 못했다.
김효은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