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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가 위기를 말할 때마다 삼성이 달라졌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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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호 24면

동물적인 감각(Animal Spirit)인가, 냉정한 형세 판단의 결과인가. 24일 경영 일선에 전격 복귀한 이건희(68) 삼성전자 회장은 “진짜 위기”라는 말로 취임 일성을 대신했다. 그는 “글로벌 일류 기업들이 무너지고 있다. 삼성도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른다. 앞으로 10년 안에 삼성을 대표하는 제품들이 사라질 것이다. 다시 시작해야 한다. 머뭇거릴 시간이 없다. 앞만 보고 가자”고 말했다. 이 회장의 위기경영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그가 ‘제2 창업’을 선언하며 경영 일선에 나선 지 3년 후인 1990년 삼성전자 매출은 본사 기준으로 4조5117억원. 이후 이 회장이 위기를 언급할 때마다 세계 전자업계의 판도는 요동쳤다. 결과적으로 삼성전자는 어려움을 극복하고 한 단계씩 도약할 수 있었다. 급기야 소니·파나소닉·HP 등을 제치고 세계 초일류 기업으로 우뚝 섰다. 하지만 이 회장은 다시 한번 위기를 강조했다. 벌써 시장에선 삼성전자에 또 한번의 질적 변화가 이뤄질 것으로 보고 있다.

23개월 만에 전격 복귀한 이건희 삼성전자 회장

1993년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바꾸다
1993년 4월 말 이 회장은 전 세계 삼성 경영진을 독일 프랑크푸르트로 불러 모았다. 하루 8시간 이상 강연과 토론이 한 달 이상 이어졌다. 그해 6월 7일 이 회장은 신경영을 선언했다. “마누라와 자식만 빼고 다 바꿔라” “2등은 아무도 기억해 주지 않는다” “정신 안 차리면 구한말 같은 비참한 사태가 올 수 있다”는 충격적인 발언이 이어졌다.

삼성전자 주력제품 중 하나인 D램. 1992년부터 세계 시장 점유율 1위로 올라섰다.

92년 실적을 보면 그다지 나쁜 상황은 아니었다. 그해 삼성전자는 6조1024억원의 매출에 2300억원의 영업이익을 올렸다. D램은 처음으로 세계 시장 1위에 올랐다. 하지만 이 회장은 “삼성이 당장 망해도 이상할 것이 없다”고 당시 상황을 진단했다. 93년 1월부터 6월까지 로스앤젤레스·도쿄·런던 등 해외 10여 곳을 돌아다니며 직접 현장을 점검한 결과였다. 현지 유통점에서 삼성의 제품은 먼지가 쌓인 채 구석에 자리하고 있었다. 점포 입구 매대에 값싼 미끼상품으로 나온 경우도 있었다. 해외에서 삼성은 삼류에 불과했다.

지난 연말 삼성을 분석한 『위기의 경영』이란 책을 낸 요시카와 료조는 “오랜만에 본 이 회장의 모습은 종전과 전혀 달랐다. 오너 회장의 여유가 사라졌고 뾰루지가 난 얼굴에 초췌한 모습이었다. 세계의 변화를 체감한 이 회장이 ‘지금 삼성 방식으로는 (세계에서) 통용되지 않는다’는 강렬한 위기의식을 가졌다”고 당시 이 회장의 모습을 묘사했다. 요시카와는 이 회장이 프랑크푸르트 선언 직후 직접 도쿄로 전화를 걸어 영입한 엔지니어다. 그는 “이 회장의 강렬한 ‘위기의식’이 삼류 가전 메이커 삼성을 일류 기업으로 도약시킨 원동력”이라고 분석했다. 소니나 파나소닉 등 일본 기업은 이 같은 위기의식이 없어 삼성에 따라잡혔고 여전히 헤매고 있다는 것이다.

이 회장은 신경영 선언을 앞두고 소니·파나소닉·필립스·지멘스 등의 제품을 진열하는 ‘비교 전시회’를 열었다. 그는 책상 위에 놓인 삼성 제품들을 일일이 망치로 내려치면서 “모든 제품을 새로 만들라”고 지시했다. 95년에는 “돈을 받고 불량품을 파는 것은 고객을 기만하는 것”이라며 구미사업장에서 무선전화기·팩시밀리·휴대전화 등 10만 대 이상의 삼성 제품을 불구덩이에 던지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삼성전자의 주력 제품은 아날로그에서 디지털로 변신했다. 브라운관TV·VTR·전자레인지 등의 비중이 줄고 반도체·액정화면(LCD)·휴대전화가 그 자리를 메웠다. 휴대전화 화형식 이후 품질 기준도 더욱 엄격해졌다. 순혈주의를 버리고 외형보다 내실을 다져 나갔다. “전자와 생명을 제외한 모든 회사가 구조조정 대상”이라며 계열사들의 체력과 실력을 원점에서 다시 검토했다. 결국 자동차는 포기해야 했다. 이런 체질 개선 덕에 외환위기를 극복하고 국내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93년 8조원이던 삼성전자 매출은 10년 후인 2003년에는 43조원으로 늘었다.

2005년 삼성전자에 충격 받은 일본
2005년 초 미국 라스베이거스에서 열린 소비자가전쇼(CES)의 주인공은 삼성전자의 보르도 LCD TV였다. 광택 나는 검은색 테두리에 스피커를 숨긴 날씬한 디자인의 이 제품은 가로로 길쭉한 은색 제품이 주류이던 경쟁사 제품 가운데 두드러졌다. 이듬해 CES에서는 모든 TV가 보르도 디자인을 참고한 형태였다. 한 중국 업체의 LCD TV는 ‘보르도의 완벽한 데드카피(모방)’라는 평을 받을 정도였다. 베스트바이를 비롯한 미국 전자양판점에서 맨 앞줄에 전시된 제품이 ‘소니·파나소닉·샤프’에서 ‘소니·파나소닉·삼성전자’로 바뀐 것도 이즈음이다. 요미우리 신문은 2005년 “삼성전자의 이익이 일본 상위 전자업체 10개의 이익을 합친 것의 두 배”라고 보도했다. 소니 관계자가 미국 양판점 경영진에게 “삼성을 이기려면 어떻게 해야 하느냐”고 묻자 “(삼성전자를) 보고 따라하라”는 답변을 들었다는 보도까지 나왔다.

이 시기 삼성전자의 행보는 승승장구 그 자체였다. 2002년 분기 영업이익이 2조원을 넘어서며 시가총액에서 사상 처음으로 소니를 넘어섰다. 2004년에는 반도체 경기가 최고조에 올라서면서 연간 영업이익이 20조원을 넘었다. 하지만 이 회장은 다시 한번 위기를 강조했다. 2002년 4월엔 “5년, 10년 뒤 무엇으로 먹고살 것인가를 생각하면 등에서 식은땀이 난다”고 말했다. 2004년에도 그는 “모든 것이 가장 잘 돌아가는 지금이 가장 큰 위기 상황”이란 말로 직원들에게 긴장을 잃지 않도록 독려했다.
이 회장의 위기의식은 창조경영으로 이어졌다. 2002년 디자인경영을 처음 언급한 그는 2005년 이탈리아 밀라노에서 디자인 전략회의를 열고 “삼성만의 아이덴티티(정체성)를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듬해에는 “21세기는 단순히 상품만 만들어 파는 시대가 아니라 창의력과 아이디어·정보를 모아 새로운 가치를 만드는 시대”라며 창조경영을 들고 나왔다.

창의성을 높이기 위해 때로는 일하지 말고 놀아야 한다는 말까지 했다. ‘관리의 삼성’에서 탈피해 ‘창조의 삼성’으로 바꾸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이 시기를 전후해 삼성의 TV·휴대전화는 세계 일류 상품으로 거듭났다. 지난해까지 유럽의 레드닷과 미국의 IDEA 같은 디자인상을 가장 많이 받은 기업으로 자리를 굳혔다. 이 같은 변신 덕분에 삼성전자는 60조~80조원 선에서 주춤거리던 연매출이 2008년부터 100조원을 넘어서며 승승장구하고 있다.

2009년 모바일 시대의 도전에 위기감
2007년 10월 삼성 법무팀장을 지낸 김용철 변호사의 ‘삼성그룹 50억 비자금’ 폭로로 이 회장은 최악의 시련을 맞았다. 특검의 수사와 법정 공방을 거쳐 지난해 8월에는 징역 3년에 집행유예 5년, 벌금 1100억원이 확정됐다. 재판이 진행되던 2008년 4월에는 삼성그룹 회장 퇴진을 포함한 경영쇄신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이 회장은 지난해 12월 특별사면을 받았지만 전격적인 경영 일선 복귀를 예상한 사람은 많지 않았다. 이 회장은 위기론을 들고 나왔지만 삼성전자는 승승장구 중이었기 때문이다.

삼성전자는 지난해 136조2900억원의 매출에 영업이익만 10조9200억원을 거뒀다. 반도체와 LCD에서 안정적인 선두를 지키고 있고 TV와 휴대전화 등도 견조한 성장세를 이어 가고 있다. 그다지 위기로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그가 일선에서 물러난 23개월간 세계 전자업계의 변화를 살펴보면 이 회장의 위기론은 뿌리가 더 깊고 더 멀리 내다보고 있다는 분석이 가능하다.

이 회장의 복귀는 도요타 사태가 도화선이 됐다. 삼성의 커뮤니케이션팀장인 이인용 부사장은 이 회장 복귀를 발표하는 자리에서 “글로벌 톱 기업이 저렇게 흔들리고 위기에 처할 수 있다는 점에서 굉장한 충격이었다”고 밝혔다. 하지만 아이폰과 아이패드를 앞세운 애플의 약진에서 더 큰 위협을 느꼈을 것이라는 분석도 나온다. 지난 10년간 전통적인 정보기술(IT) 분야의 강자들은 모바일 시대의 도래에 재빠르게 적응하지 못해 하루하루 위상이 추락했다. 99년 6000억 달러에 달했던 마이크로소프트(MS)의 시가총액은 지난해 말 2600억 달러에 그쳤다. 인텔과 소니는 10년 만에 시가총액이 3분의 1로 줄었다. 그 자리를 ‘무서운 아이들’인 애플과 구글이 차지했다. 애플은 10년 만에 시가총액이 10배로 늘었고 2004년 상장한 구글은 IBM을 넘어 MS 수준을 바라보고 있다.

삼성전자도 같은 기간 시가총액이 세 배로 늘었지만 모바일 기업의 역동성은 따라잡지 못했다. 특히 차세대 핵심 제품으로 떠오른 스마트폰에서 점유율이 3%대에 불과하다.

애플은 스티브 잡스 회장의 복귀 이후 음악·동영상 콘텐트 시장인 아이튠즈, 스마트폰용 응용 프로그램(애플리케이션) 오픈마켓인 앱스토어를 아이폰·아이팟과 연동해 새로운 ‘모바일 생태계’를 창조했다. 개발자들이 만든 10만여 개의 소프트웨어를 사용하기 위해 아이폰을 구입하고, 그에 따라 아이폰 사용자가 늘어날수록 더 많은 소프트웨어와 콘텐트가 올라오는 선순환 구조를 만든 것이다. 애플의 지난해 4분기 매출은 157억 달러로 삼성전자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만 이익은 더 많다. 최지성 삼성전자 사장은 올해 초 CES에서 “아이폰은 삼성전자를 테스트한 제품이었고 우리를 반성하게 했다”고 말했다. 애플에 이어 구글도 스마트폰용 운영체제인 안드로이드를 내놓으며 인터넷에 이어 모바일 시장도 넘보고 있다.
 
2010년 “글로벌 일류기업이 무너지고 있다”
이 회장의 위기감은 반도체와 LCD를 대체할 신수종사업이 확실치 않다는 것이다. 글로벌 일등 기업이 시대 변화를 감지하지 못해 순식간에 추락하는 것이 현실이다. 전 세계 PC 업계에서 선두를 달리던 델은 HP에 추월당한 데 이어 올해는 대만의 에이서에 밀려 3위로 전락할 처지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트리니트론 TV’를 앞세워 아날로그 시대의 절대 강자로 불리던 소니도 디지털 시대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해 이제는 3위로 밀려났다. 사실 삼성전자는 10년 후를 얘기할 수 있는 몇 안 되는 전자업체 중 하나다. 반도체·LCD 부품과 TV·휴대전화의 완제품에서 최고 수준의 경쟁력을 갖추고 있어 하드웨어만 열심히 팔아도 최소한 5년은 먹고사는 데 지장이 없다.

하지만 그 이후를 생각한다면 그동안 소홀히 했던 소프트웨어와 콘텐트 분야를 포함해 새로운 성장동력을 찾아야 하는 과제를 안고 있는 것도 사실이다. 삼성전자가 올 들어 소프트웨어 개발자 1만 명 확보에 나서는 등 적극적인 움직임을 보이는 것도 이 때문이다.

대공황의 해결사 역할을 한 존 메이너드 케인스는 1936년에 발표한 ‘고용·이자 및 화폐에 대한 일반이론’에서 “무언가 적극적인 행동에 나서게 되는 결정의 대부분은 아마 애니멀 스피릿, 즉 가만히 있기보다 행동에 나서려는 자생적 충동의 결과”라고 썼다. 케인스를 존경한다는 정운찬 국무총리는 이 말을 ‘야성적 충동’으로 번역했다. 본능적으로 위기를 느끼고, 경쟁자보다 한발 앞서 대응에 나선 덕에 위기를 기회로 바꾼 것이 ‘이건희 경영’의 요체다. 복귀한 이 회장은 삼성전자 서초사옥 42층에 사무실을 마련한다. 테헤란로와 강남대로가 내려다보이는 집무실에서 이 회장이 내놓을 대안이 뭔지 세계가 지켜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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