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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천재 작곡가들의 약점은?

중앙선데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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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9호 05면

‘아이가 말을 지나치게 빠르게 한다. 중요한 말은 별로 없다.’→리스트 이펙트.
‘아이가 말을 아주 느리게 한다. 했던 얘기를 계속 또 한다.’→브루크너 이펙트.
‘아이가 계속 소리를 지른다. 아주 길고 크게 소리를 지른다. 결국 죽는다.’ →말러 이펙트.

김호정 기자의 클래식 상담실

작곡가들을 놀리는 인터넷 유머가 짓궂네요. 프란츠 리스트(1811~86)의 음악은 음표가 한꺼번에 쏟아지는 것만 같습니다. 작곡가의 손가락이 매우 빨랐기 때문일까요. 악보 위에선 짧은 음표가 몰려다니고 복잡한 화음이 떼지어 있습니다. 여간한 기술 없이는 엄두 내기 힘든 연주죠.

네티즌들은 아이에게 모차르트 음악을 들려주면 머리가 좋아진다는 ‘모차르트 이펙트’에 빗대 ‘각종 작곡가 이펙트’를 만들었습니다. 요제프 안톤 브루크너(1824~96)는 경건하고 숭고한 정신을 진지하게 풀어놓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숨이 넘어갈 듯 느리고 지루할 때도 있습니다. 구스타프 말러(1860~1911)의 작품은 오케스트라의 음량을 ‘MAX’에 놓은 듯합니다. 매력적이지만, 전형성은 공격의 대상이 되기 쉽죠. 말러가 ‘죽음’이라는 화두를 콤플렉스처럼 붙들었던 점 또한 네티즌들의 웃음 코드가 됐네요.

뛰어난 작곡가에게도 약점은 있습니다. 인기 드라마 ‘천국의 계단’에 나와 대중성을 확인한 쇼팽의 피아노 협주곡 1번 2악장을 기억하시는지요. 이처럼 감정을 무심히 툭툭 건드리는 피아노 선율은 쇼팽 아니면 쓸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 작품을 연주하는 오케스트라 단원들은 코웃음을 치기도 한답니다.

‘오케스트라 없이 피아노 혼자도 연주할 수 있겠다’는 거죠. 200곡 넘는 쇼팽 작품 중 피아노가 안 들어간 것은 찾기 힘들 정도로 그의 평생 관심은 피아노였습니다. 쇼팽의 교향곡, 혹은 바이올린 소나타 등을 본 적 없으실 겁니다. 다양한 악기가 모인 오케스트라를 다루는 쇼팽의 실력, ‘물음표’로 남겨놔야 할 듯합니다.

브람스는 쇼팽보다 조금 낫지만, 또한 피아노 중심적입니다. 자신이 훌륭한 피아니스트이기도 했고, 클라라 슈만이라는 피아니스트에게 평생 관심을 기울이다 보니 악기에 대한 사랑도 기울 수밖에요. 그의 바이올린 협주곡은 바이올리니스트를 혹사합니다. 이 악기를 잘 몰랐던 탓에 손가락을 과도하게 늘려 연주하게 하거나 피아노처럼 몇 개의 음을 한꺼번에 소리 내게 지시한 거죠. 낭만시대의 꽃을 피운 역사적 작곡가에게도 이처럼 모자란 점이 있었습니다.

또 라흐마니노프는 지나치게 직설적이라는 비판을 듣습니다.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2, 3번이나 첼로 소나타를 반복해 들어보세요. 유행가처럼 귀에 쏙쏙 들어오는 멜로디로 사랑받죠. 하지만 바로 그 점 때문에 쉽게 질릴 위험도 있습니다.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는 이유가 곧 싫어하는 원인으로 바뀔 수도 있다는 거죠. 장점은 약점을, 사랑은 싫증을 동반하는 걸까요. 뛰어난 작곡가들의 단점이 평범한 우리에게도 메시지를 주네요.

A 쇼팽ㆍ브람스 ‘피아노 편식’ 심해

※클래식 음악에 대한 질문을 받습니다.
클래식을 담당하는 김호정 기자의 e-메일로 궁금한 것을 보내주세요.


중앙일보 문화부의 클래식·국악 담당 기자. 사흘에 한 번꼴로 공연장을 다니며, 클래식 음악에 대한 모든 질문이 무식하거나 창피하지 않다는 믿음을 가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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