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요 영화] SBS '플란다스의 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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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플란다스의 개 (SBS 밤 10시50분)=지난해 개봉해 흥행에는 참패했지만 '새로운 감성의 영화' '심상치 않은 블랙 코미디' 라는 평단의 호평을 이끌어냈다.

근자의 한국영화 중 작품성에 비해 가장 홀대받은 영화로 꼽을 만하다. 홍콩국제영화제 국제영화비평가연맹상, 슬램댄스 영화제 편집상 등을 받아 오히려 외국에서 대접을 받았다. 단편영화 '지리멸렬' 로 명성을 얻은 봉준호 감독의 장편 데뷔작. 만화적 상상력으로 상황과 인물을 요리하는 감독의 재주가 번득인다. 제목은 만화에서 따왔지만 정작 파트라슈는 등장하지 않는다.

교수를 꿈꾸며 백수처럼 지내는 시간강사 윤주(이성재)가 개짖는 소리가 싫다며 개를 납치해 아파트 지하실에 가둔다. 사람도 제대로 못 사는데 웬 애완견이냐는 생각에서다. 아파트 관리 사무소에 개를 찾는 사람들이 줄을 잇자 관리사무소 여직원 현남(배두나)은 전단을 붙이며 개 찾기에 나선다. 마침 현남은 윤주가 애완견을 아파트 옥상에서 떨어뜨리는 순간을 목격한다.

주위에 널려 있는 일들을 코믹하면서도 몽환적인 기법으로 그려낸 이 영화는 도시적이지만 따뜻하고, 혹독해 보이지만 부드럽다.

부패한 현실과 타협하는 지식인 윤주, 애완견을 먹어치우는 경비원, 무능한 남편을 무시하는 윤주의 아내 은실 등 타락하고 냉혹해 보이는 이들을 감독은 차가운 시선으로만 보지 않기 때문이다. 오히려 잃어버린 순수함 때문에 동정이 가는, 동화적 인물로 그들을 그린다. 선머슴 같은 배두나의 중성적 매력이 돋보이고 '뚱녀' 장미(고수희)의 연기가 신선하다.

신용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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