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이혼하는 세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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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결혼하기 전에는 두 눈을 뜨고, 결혼한 뒤에는 한 눈을 감으라는 말이 있다. 최대한 신중하게 결정할 게 결혼이지만 일단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 함께 살기로 작정했다면 가급적 서로의 허물을 덮어주고 감싸면서 살아야 한다는 얘기다.

그러나 말이 그렇지 이게 어디 쉬운가. 멀었던 두 눈도 결혼하고 나면 번쩍 떠지니 말이다. 그래서 영국 작가였던 오스카 와일드는 "서로의 오해에 바탕을 둔 것이 결혼" 이라 했고, 독일 시인 하이네는 결혼을 '어떤 나침반도 항로를 발견하지 못한 거친 바다' 에 비유했다.

최다 결혼기록 보유자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는 미국인 목사 글린 스코티 울프는 '결혼서약' 을 평생 취미로 삼은 인물이다. 결혼할 때마다 "죽음이 우리를 갈라놓을 때까지…" 를 맹세했지만 사소한 일에도 눈을 부라렸다.

부인이 침대에서 해바라기씨를 까먹은 것이 발단이 돼 이혼하기도 했고, 부인이 남편 칫솔을 쓴 것이 화근이 돼 이혼한 일도 있다. 88세가 되던 1997년 의지가지 없는 신세로 양로원에서 숨질 때까지 그는 29번 결혼하고 28번 이혼했다. 그를 23번째 남편으로 받아들였던 마지막 아내 역시 여성부문 최다 결혼기록 보유자로 기네스북에 올라 있다. 이혼도 처음 한번이 어렵지, 다음부터는 별게 아니라는 뜻일까.

이혼의 후유증에 관한 연구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주디스 월러슈타인 박사에 따르면 둘 다 초혼인 경우 이혼율은 40%지만 재혼이면 60%, 세번째 결혼에서는 75%로 높아진다고 한다. 물론 미국의 경우다.

그래서 재혼일수록 서로에 대한 이해와 배려가 더욱 중요하다는 것이다. 일본의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총리는 "결혼에 드는 에너지가 1이라면 이혼에는 10이 소모된다" 는 말로 재혼하지 않고 혼자 사는 이유를 설명했다.

지긋지긋한 사람과 갈라서고 나면 언제든 마음만 먹으면 재혼할 수 있다는 기대는 환상인지 모른다. 두 눈 부릅뜨고 사람을 보기 때문에 사랑에 빠지기가 훨씬 어려워질 수 있다는 것이다.

통계청 발표에 따르면 지난 한해 동안 33만쌍이 결혼하고 12만쌍이 이혼했다. 세쌍이 결혼하면 한쌍이 이혼하는 셈이다. 이혼율은 독일.일본.프랑스 같은 선진국 수준을 이미 넘어섰다고 한다.

한쪽 얘기만 듣고 알 수 없는 게 남녀관계라지만 결혼생활의 거친 파도에 대한 인내심이 전같지 않은 건 틀림없는 것 같다. 이혼하는 세태를 개탄만 할 게 아니라 부작용을 최소화하는 사회적 시스템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 됐다.

배명복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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