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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나] 정해종씨가 읽은 '문화과 예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33면

유난히 눈이 많던 지난 겨울, 나는 아프리카 짐바브웨에 있었다. 여행 목적은 아프리카 쇼나 현대 조각전시회(성곡미술관. 6월 30일까지)의 작품 콜렉션이었다. 미술관들은 물론 산골 오지 마을들과 빈민굴을 뒤지고 다녀야 했던 이 고된 여행에서 내가 얻은 것은 '감동' 과 '확신' 이었다.

빈민굴의 초라한 노인네의 창고에서 먼지를 뒤집어 쓴 채 조각 예술의 한 경지를 보여 주던 작품들, 내가 확인한 아프리카 쇼나 조각의 현장은 그 자체가 감동이었다.

그리고 그 감동의 결과로 나는 삶의 방향을 바꾸기로 결심했다. 출판기획자에서 아프리카 전문 문화기획자로의 전업 말이다.

그러나 생각해보면, 아프리카와 아프리카 문화에 대한 잠재된 갈증은 꽤 오래됐다. 아프리카가 마티스와 피카소, 포비즘과 큐비즘 등 20세기 현대미술실험 작업의 정신적 젖줄임을 희미하게나마 확인할 수 있는 책인 곰브리치의 『서양미술사』(예경)와 H W 잰슨과 그의 아들이 공동집필한 『서양미술사』(미진사)를 오래 전 읽어뒀기 때문이다.

두 권의 입문서는 매우 탁월한 저술들이다. 선사시대에서 최근의 미술까지 다루면서도 명료성과 균형감각을 놓치지 않는 방대한 지식 체계는 신출내기 문화기획자인 나의 교과서인지도 모른다. 또 헝가리의 예술사회학자 아놀드 하우저의 『문학과 예술의 사회사』(창작과 비평사)는 예술 전반에 대한 본질을 꿰뚫는 통찰력과 논리적 설득력이 돋보이는 책으로 꽤 오랫동안 내 책장 로열층에 자리잡고 있다.

문학과 출판, 전시기획 등 내가 해 온 일들의 뒷심을 길러준 책이 이것이고, 앞으로도 내 손 닿는 곳에 두고 싶은 책이다.

특정 장르의 예술에 대한 근거 없는 아집을 버리게 해주었던 진중권의 『미학 오디세이』(새길), 조각의 예술적 이해에 깊이를 더해 준 톰 플린의 『조각에 나타난 몸』(예경) 등도 최근 나의 직업적 전환기에 직.간접적으로 용기를 불어 넣어준 책으로 꼽고 싶다.

정해종 시인 터치 아프리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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