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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피니언 분수대

전기자동차와 소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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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모터 사이클 ‘할리 데이비슨’의 특징은 무엇보다 우렁찬 배기음이다. 엔진의 연소 주기를 심장 박동수와 연계시켰다고 한다. 그래서인가. 시동을 거는 순간 젊은이의 심장이 고동치는 것은. 1969년도 영화 ‘이지 라이더’에서 할리는 기성세대에 대한 항거이자 거침없이 질주하는 젊음을 상징했다. ‘터프가이’ 영화배우 최민수도 ‘호그(HOG)족’으로 알려져 있다.

할리는 특유의 배기음에 대해 94년 특허를 출원하기도 한다. 복잡한 절차에 결국 포기했다고 하지만. 한국에 수입되는 할리는 법규에 따라 배기음이 80데시벨(db) 이하로 조정돼 있다. 따로 조작하지 않는 한 우렁찬 배기음을 감상하기 어렵다.

스포츠카의 대명사 페라리도 마무리에서 가장 신경쓰는 것이 엔진 배기음이라고 한다. 금속성 박동으로 지축을 흔들며 질주하는 모습은 스포츠카 매니어들의 로망이다. F1의 묘미도 레이싱카가 내뱉는 찢어지는 듯한 굉음 아닐까.

그런가 하면 고급 세단은 너무 조용해서 탈이다. 시동이 꺼진 줄 알고 키를 돌리다 ‘키릭키릭’ 하는 불쾌한 소리를 듣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재규어는 정속으로 주행할 때 ‘테너 C’ 높이로 조절된 엔진음을 차내로 흘려보낸다고 한다.

문제는 전기자동차다. 내연기관 없이 전기와 모터로만 움직이니 소음이 없다. 시속 40㎞ 이하로 달리면 바퀴와 노면 사이에 마찰음도 없다. 보행자의 안전에 적신호가 켜진 것이다. 롤스로이스가 처음 나왔을 때 소리 없이 유령처럼 다가온다고 해서 ‘실버 고스트’란 별명을 얻었다. 지금 모델도 유령이란 뜻의 ‘팬텀’이다. 한때는 자부심이었던 이 무소음이 안전상의 문제로 대두된 것이다. 현재 미국 의회는 디지털 카메라에 사생활 보호 차원의 ‘셔터음’을 규정한 것처럼, 전기자동차에도 안전 차원의 적당한 소음을 강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이다.

그러자 벌써 전기자동차용 주행음을 파는 회사가 생겼다. 모토는 ‘ppp보호’다. 사람(people)과 애완동물(pet)과 지구(planet) 말이다. Mp3로 다운로드하는데, 제트기·모터사이클·스포츠카 소리가 대표 상품이다. 장중한 협주곡과 부드러운 소나타, 새 소리도 있다. 기분에 따라, 도로 여건에 따라 마음대로 고르라는 것이다. 우리나라도 다음달부터 전기자동차가 도로를 주행하게 된다. 전기자동차가 많아지면 도로는 과연 어떤 소리로 가득할까. 제멋대로 주행음에 ‘불협화음을 위한 협주곡’이 되지나 않을까 지레 걱정이다.

박종권 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