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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0년 내다보는 일본의 원전 정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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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원전은 어느 나라에서나 ‘우리 마을엔 안 된다’는 ‘님비 현상’의 표적이다. 일본인들은 히로시마(廣島)·나가사키(長崎)의 피폭 경험 때문에 원자력에는 알레르기 반응이 더욱 심하다. 그럼에도 후쿠이는 원전 산업으로 ‘산골의 부촌’이 됐다. 원자력 연구개발의 거점으로 발전하면서 원전 사업자와 연구소가 모여들어 관련 종사자가 2만 명에 이른다. 핵연료세 등의 원전 관련 세수는 1000억 엔(약 1조2500억원)에 달해 현 세수의 11%를 떠받친다.

세계적으로 상용화된 경수로에서 차세대 원전인 고속증식로 등 모든 형태의 원전이 설치되면서 지역 전체가 ‘원전의 전시장’이 됐다. 이렇게 겁 없이 원전을 유치하다 보니 원전 사고가 발생하기도 했다. 1995년 시험 운전에 나선 고속증식로의 열을 식히는 냉각물질이 누출되는 사고였다. 그러나 이 경험을 토대로 후쿠이현은 오히려 일본 최대의 원자력 연수 지역으로 떠올랐다. 사고 대책을 경험으로 2005년부터 원자력 연수를 개시해 해마다 1300여 명의 수강생을 배출하고 있다.

문제의 고속증식로는 철저한 대비책 마련으로 중단 15년 만인 올해 가동이 재개된다. 일본이 고속로 개발에 박차를 가하는 이유는 미래 세대의 에너지원 확보를 위해서다. 원전의 원료인 우라늄도 화석연료처럼 고갈된다. 현재 확인된 잔존량은 547만t으로 현재 속도로는 100년쯤 지나면 동이 날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그래서 일본은 우라늄 이용 효율을 높일 수 있는 고속로 개발을 국책사업으로 추진 중이다. 개발에 성공하면 우라늄 사용은 3000년쯤 연장될 수 있다.

일본은 미국·러시아·프랑스·중국 등 경쟁국들에 앞서 최초의 상업 운전에 성공한다는 목표도 세워놓았다. 2015년까지 설계를 마치고 2025년 개발을 완료해 2050년 전력 생산을 개시한다는 계획이다. 일본의 야심 찬 노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창업자 빌 게이츠와 제휴하는 행운으로 연결됐다. 친환경에 관심을 갖고 있는 그가 원전 개발에 나서면서 고속로 개발에 힘쓰고 있는 도시바와 제휴해 최장 100년간 우라늄을 교환하지 않아도 되는 신형 원자로 개발에 나선 것이다.

일본은 최근 원전 수출에 잇따라 실패하자 큰 충격에 빠져 있다. 그러나 와신상담(臥薪嘗膽)의 의지를 불태우고 있다. 차세대 고속로 개발에만 성공하면 일거에 대세를 뒤집을 수 있다고 보는 것이다. 아사다 마오가 독기를 품고 김연아 타도에 나선 모습을 연상시킨다. 더구나 성능은 높고 가격은 낮춰 수출까지 겨냥하고 있다. 우리도 올 초 ‘아랍에미리트(UAE)의 성공’에 취해 있을 때가 아니다. 일본의 분발을 어느 때보다 예의주시해야 한다.

김동호 도쿄 특파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