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35기 왕위전] 서봉수-안영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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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42면

徐9단 입맛 다시며 黑 탈출 허용

제5보 (56~71)=흑▲로 밀고 나온다. 살기 위해선 이 한 수뿐이다. 대개는 이같은 몸부림이 싫어 이런 극단적인 코스를 피하게 마련이지만 安4단은 태연하다. 그는 지금 한국식 잡초류로 불리는 실전바둑의 극단을 보여주고 있다.

"사실 그런 식으로 버텨올지는 상상하지 못했다. "

잡초류의 대가인 徐9단의 이같은 고백에서 오늘날 한국 바둑의 격렬한 흐름을 새삼 절감하게 된다.

56은 지나는 길에 두어본 수고 결국 백은 58로 젖히게 돼 있다. 63까지는 외길. 돌파는 했으나 흑은 지독한 포도송이의 모습이다. 포도송이는 대개 죽는다던데 安4단의 돌은 69에서 드디어 훨훨 날아가버렸다.

전보에서 얘기했듯이 66으로 뒷수를 조여도 선수가 되지 않는다는 것이 흑의 자랑이다.

68은 徐9단이 근 30분이나 망설인 수. '참고도' 백1로 한방 두드리고 싶어 근질근질했기 때문이다.

이 한방에 흑의 응수는 2의 빈삼각뿐이니 일단 기분은 좋다. 하지만 다음이 잘 안된다. 일례로 3에 씌우면 흑6까지 거꾸로 잡혀버린다. 徐9단은 그래서 입맛을 다시며 68로 참고 탈출을 허용했던 것이다.

그렇더라도 흑이 이 괴로운 탈출을 통해 얻은 것은 뭔가. 실리도 아니고 세력도 아니다. 오히려 백의 등판이 두터워져 그 위용이 중앙을 압도하고 있다. 또 70으로 달리니 이곳 백의 실리도 짭짤하다.

검토실이 이런 생각에 젖어 있을 때 安4단은 71로 밀어왔다. 연속되는 강수의 파노라마다.

박치문 전문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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