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낙태 논란, 그리고 성교육과 피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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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7면

불법 인공임신중절(낙태)이 이슈화되면서 각계각층에서 해결책에 대한 의견이 분분하다. 낙태는 태아의 생명뿐 아니라 가족들의 사회경제적 여건과도 밀접하게 연관돼 있어 쉽게 결론 내리기 어려운 문제다. 문제 해결을 위해선 낙태 자체를 고려할 필요가 없는 환경을 조성하는 게 가장 우선시돼야 한다. 실질적인 성교육을 통해 올바른 피임 방법을 알리고, 이에 대한 사회적인 공감대를 형성하는 것이 필요하다.

우리나라 10대 청소년의 경우 다양한 경로로 성에 대해 접하고, 첫 성관계를 경험하는 평균 연령도 점점 빨라지는 추세다. 학교 성교육은 10대들이 성에 대해 올바른 정보를 얻을 수 있는 거의 유일한 기회이지만 그 내용이 시대 변화를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 올바른 성교육을 위해서는 강의 내용과 교사의 인식 개선 등 학교의 변화뿐만 아니라 가정과 사회 전반의 교육이 수반돼야 한다. 다 함께 생명 존중의 가치를 바탕으로 피임교육을 포함한 현실적인 성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또한 여성 스스로가 피임에 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선 피임에 대한 책임을 남성에게 부여하는 경향이 높다. 여성 주도적인 피임법 중 하나인 먹는 피임약의 국내 복용률이 2.5%로, 40% 이상인 벨기에나 14%인 미국 등 선진국에 비해 현저하게 낮은 것이 단적인 예다.

불법 낙태를 줄이기 위해선 법적 제재나 제도적 인프라 구축도 중요하다. 출산·양육과 미혼모에 대한 지원도 늘려야 한다. 그러나 이런 대안만으로 인공임신중절의 근본 원인인 ‘여성의 원치 않는 임신’을 방지할 수 없다. 학교·가정·사회가 성교육을 개혁하고 피임에 관한 올바른 인식을 확립하는 것이 시급하다.

김석현 서울대병원 교수산부인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