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주시 봉현분교 천자문 다시 가르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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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하늘 천, 따지. 가물 현 누르 황…. " 충남 공주시 우성면 봉현리 골짜기에 있는 한 시골 폐교(閉校)운동장. 을씨년스러운 폐교 건물에 불이 밝혀지고, 때 아닌 학동(學童)들의 천자문 읽는 소리가 울려퍼진다.

이곳은 지난해 2월 말 개교 50년 만에 문을 닫은 우성초등학교 봉현분교다. 그러나 은혜(12)양.병목(12)군 등 인근 마을의 초등학생 20여명은 인근 학교로 재배정된 뒤에도 방과 후 이곳을 찾는다.

충남지역 교사.학부모들의 모임인 충남교육연구소(http://ceti.or.kr/ceri)가 지난해 11월 학교를 임대해 교문을 다시 열었기 때문이다. 권정안(權正顔)소장이 재직 중인 공주대 한문교육과 학생 등 자원봉사자들이 매주 화.수.목요일 천자문과 사자소학을 가르친다. 그래서 아이들이 붙인 이름은 봉현서당.

지난 3월에는 연구소 부소장인 이진철(李鎭哲.41.충남 예산군 신암중 교사)씨 가족이 이곳으로 이사해 도서관.공부방과 체육관도 꾸몄다.

충남교육연구소는 지난해 8월 이 지역 교수와 초.중.고 교사 등 1백40여명이 '상생의 교육.삶의 교육' 을 목표로 창립했다. 교단과 가정의 교육 주체들이 소외된 지방교육 살리기에 나선 것. 폐교는 연구소의 첫번째 현장 활동 무대다. 연구소 회원들이 이곳에 정기적으로 모여 교육 현안을 토론하고 인근 마을 청년모임인 동향체육회가 매주 체육행사를 열면서 지방의 교육문화 공간이 됐다.

李부소장은 "교육 위기란 말을 하지만 학교가 문을 닫는 시골만큼 어려운 여건은 없다" 며 "폐교 살리기를 출발점으로 지방 학교에 생기를 불어넣고 싶다" 고 말했다.

연구소는 충남 민교협과 정기 세미나를 여는 등 교단에서 직접 적용할 수 있는 통일 교육과 학교 행사 프로그램 등을 개발 중이다.

공주=정효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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