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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너리티의 소리] 시간강사의 '스승의 날'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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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얼마 전 스승의 날을 앞두고 출강하는 지방의 어떤 대학 수업시간에 학생들에게 평소 존경하는 은사께 편지를 쓰라는 과제를 주었다. 맡고 있는 교양강좌가 실용적인 글 쓰기와 관련된 과목인데다 평소 인성교육을 강조하던 학교 방침과 맞물려 주어진 과제였다.

비록 반강제적인 과제였지만 대부분 학생들은 편지를 쓰는 동안 모처럼의 추억에 젖어 즐거운 표정이었다. 그런데 정작 나는 스승의 날만 닥쳐오면 어색하고 곤혹스럽기까지 하다.

어쩌다 이날 강의가 있는 경우 꽃을 들고 연구실로 찾아다니는 학생들을 보면 전임교수들이 은근히 부럽기도 하고, 간혹 수업시간에 나도 꽃 한 송이라도 받을라치면 황송해하면서 한편으로 어색해지기도 하는 것이다.

이처럼 대학의 시간강사로 맞는 스승의 날엔 마치 들러리라도 선 듯한 묘한 감상과 자의식에 빠지게 된다. 왜 그럴까? 나는 '존경받는 스승' 이기는커녕 도대체 '선생' 이기나 한 것인가?

실제로 대학 시간강사들은 학생들을 가르치고는 있으되 경제적으로는 물론 법적.제도적으로도 대학에서 소외된 상태다. 교육법에 따르면 교원은 전임교원과 조교로만 돼 있어 대학교육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시간강사들은 신분보장을 받지 못하는 한낱 '일용잡급직 노동자' 에 지나지 않는다.

대개 6개월 단위로 임용되지만 강의 시간에 따라 강의료가 지급되기 때문에 실제는 4개월간 한시적으로 고용되는 셈이다. 최저 생계비에도 턱없이 못 미치는 열악한 임금 수준인 상황에서 복지혜택은 꿈도 못 꿀 일이다.

최근 대학 시간강사의 명칭을 '외래교수' 로 바꾼 대학이 있고, '강의교수' 혹은 '연구강사' 로 바꾸자는 논의가 나오기도 한다. 하지만 명칭만 바꿔서는 아무런 변화도 이뤄질 수 없다.

시간강사들이 받는 처우에 비해 대학교육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실로 엄청나다. 전체 강의시간의 35% 정도를 맡고 있고 교양과목의 경우 그 비율이 70~80%에 달한다.

이런 문제를 덮어두고 대학교육의 정상화나 국제 경쟁력 확보를 요구하는 것은 어불성설일 뿐이다. 오늘날 대학강사가 처한 모순된 현실은 곧바로 한국 대학이 처한 모순의 현주소라 생각한다.

얼마 전 한완상 부총리 겸 교육인적자원부 장관이 국립대 교원 확충 계획을 대통령에게 보고했다. 대학 시간강사 문제를 해소하기 위해 내년부터 연차적으로 국립대 전임 교원을 2천명 늘리고 강사료도 26% 정도 인상하는 한편 현재 65%에 불과한 국립대 교수 확보율도 2004년까지 75%로 올린다는 것이다. 교수 확보율은 교수 한명이 가르칠 수 있는 법정 학생수 기준을 얼마나 충족시키고 있는지를 백분율로 나타낸 수치다.

교육부의 교수 1인당 학생수 기준은 인문.사회 계열 25명, 자연 과학.공학.예체능 계열 20명, 의학 계열 8명이다. 교수 확보율은 1995년 77.0%까지 올라갔으나 97년부터 계속 낮아지고 있는 추세다.

우리나라 대학 교수 1인당 학생 수는 39.7명으로 70년에 비해 두배 이상 늘었다. 이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5.3명(95년 기준)의 세배에 가까운 것이다. 교육부는 사립대에 대해서도 시간강사를 전임 교원으로 더 많이 받아들이도록 교원확보율을 대학 재정지원의 척도가 되는 대학평가 지표로 활용하거나 학생정원 증원과 연계하기로 했다. 덕분에 교원 확보율은 다소 올라갔다.

그러나 속을 들여다보면 대학들이 전임교수를 뽑는 대신 보수가 싼 겸임교수를 대거 채용했기 때문이다.

이 보고에는 이밖에 대학 강사에게 각종 복지 혜택이나 방학기간의 급여 지원, 1년 단위의 계약 등 신분 안정 방안을 중.장기적으로 검토한다는 내용이 들어 있다. 물론 반길 일이다. 하지만 지원의 초점이 국립대학에만 맞춰져 있는 데다 중.장기적인 검토 수준에 머문다면 뭔가 미흡한 감이 있다.

시간강사들의 처지는 실로 절박하다. 더불어 대학교육이 처한 위기도 그만큼 절박한 것이다. 모처럼의 대학 개혁에 대한 의지가 경제논리에 의해 구두선에 그치지 않기를 바라는 마음 간절하다.

유병관 성균관대 강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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