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영TV 채널운영 공공성 무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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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1면

국.공영방송의 TV채널 정책이 흔들리고 있다.

세금.수신료 등으로 운영되는 이들 채널은 KBS.교육방송(EBS) 등 6개 법인에 케이블.위성방송을 포함해 12개나 되지만 중복투자 등으로 방송정책에 원칙이 없다는 지적을 받고 있다.

교육의 경우 유사한 기능을 하고 있는 지상파의 EBS, 케이블의 방송대학TV가 별도 법인으로 방송을 하고 있다. 민간이 운영 중인 교육채널(재능 스스로)이 있는데도 따로 채널을 만든 것이다.

허행량(許倖亮.매체경제학)세종대 교수는 "시청자층이나 용도별로 방송사.채널을 만든 정부의 정책은 전파의 희소성을 바탕으로 한 공공성을 무시한 것" 이라며 "이 때문에 방송 인력, 장비 및 시설의 중복투자가 이뤄졌다" 고 강조했다. 내용이 비슷한 채널은 법인 한 개에 여러 개의 프로덕션을 만들어 프로그램의 질을 높일 수 있었다는 것이다.

문제는 국민이 지상파.케이블.위성방송에 KBS수신료 등 여러 형태로 이들 채널의 재원을 부담하고도 방송대학.국립영상.아리랑TV와 시험방송 중인 위성 채널들을 거의 볼 수 없다는 점이다. 방송대학TV의 경우 케이블로만 시청이 가능해 방송통신 대학생들은 가입료 외에 매달 시청료를 내야 볼 수 있다.

때문에 현재 방송시설.기자재 등이 전혀 활용되지 않는 지상파의 낮방송 시간대를 이용해야 한다는 견해가 있다. 그러나 KBS 등 지상파 관계자들은 "낮방송에 채울 콘텐츠가 부족하고 시청률이 떨어져 광고수익이 줄어드는 데다 24시간 근무시 인력 증가에 따른 수익 구조에 문제가 있다" 며 난색을 표시했다.

국.공영방송의 전파 및 예산낭비를 줄이는 게 시급하다는 의견도 있다. 이들 지상파가 프로그램을 비싼 값에 자체 제작하려고만 할 게 아니라 외부 제작사들로부터 교육.외국어.노인프로그램 등을 구입해 낮시간대에 공익성 있는 편성을 할 수 있다는 것이다.

방송위 관계자는 "이같은 지적은 채널사용사업자(PP) 등록제나 디지털TV의 도입과 같은 최근 방송환경의 커다란 변화와 맞물려 제기되고 있다" 고 밝혔다.

연내 출범할 디지털위성방송의 공영채널 배정에도 문제가 있다. 방송법상 KBS1.2, EBS 등 지상파TV 세개를 그대로 재송신하고 방송대학TV 등 케이블의 공공채널 세개를 의무적으로 방송하도록 돼 있기 때문이다.

한국디지털위성방송(KDB) 관계자는 "전체 74개 채널 중 방송 예정인 공영채널이 7개나 된다" 고 밝혔다. 또 시험방송 중인 KBS1.2, EBS1.2 등 4개 위성채널도 곧 포함될 것으로 보인다.

이 경우 난시청 해소를 위해 위성채널을 사용한다고 하지만 현재 위성과 케이블을 통해 방송 중인 이들 4개 채널이 내년 말까지 KDB의 위성망을 중복이용하게 되는 셈이다. 결국 연내 첫 전파를 발사할 위성방송이 이같은 전파.예산낭비의 부담을 안고 당초 예상했던 것처럼 이른 시간 내에 정상궤도에 올라설지 의문이라는 게 KDB 안팎의 우려다.

許교수는 "채널.조직의 방만한 확대에 따른 낭비를 막기 위해 공공성이 강한 교육채널 등을 통합하거나 사업부제로 운영해야 한다" 고 밝혔다.

또 유사채널은 수익자 부담 원칙에 따라 세금 등을 통한 간접지원을 없애고 정부가 꼭 운영해야 할 일부 채널을 빼고는 민간에 매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는 무엇보다 정부나 정부투자기관이 뚜렷한 잣대없이 해온 국.공영채널 신설과 '자리 늘리기용' 조직 확대를 그만두고 방송마다 놀고 있는 시설물 등을 제대로 활용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김기평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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