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경제연 "국내 CEO 리더십 위기 맞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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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기업경영에서 최고경영자(CEO)가 차지하는 중요성이 갈수록 커지는 가운데 국내 CEO들은 전통적인 경영관행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 리더십의 위기를 맞았다는 분석이 제기됐다.

삼성경제연구소(http://www.seri.org)는 '전환기 CEO의 역할과 경쟁력' 이라는 보고서에서 "구조조정을 올바른 방향으로 과단성 있게 추진하기 위해서는 역량있는 CEO가 절대적으로 필요한 시점이지만, 성장시대를 이어갈 만한 새로운 기업가 정신이 발휘되지 못한 채 과거 체제나 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고 지적했다.

◇ 임기가 짧아 신분이 불안정하다〓국내 CEO의 절반이 임기 2년을 제대로 채우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일본의 2.5배, 미국의 1.5배에 이르는 수치다.

오너 중심 체제와 전문성보다는 대인관계를 중시하는 경영관행 탓에 CEO들은 실적과 관계없이 계열사를 순환하거나 본의 아니게 사직하는 경우가 많다. 이같은 점이 CEO들이 능력을 발휘할 수 있도록 하는 인센티브제를 도입하기 어렵게 만드는 요인이다.

◇ 보상이 적고 인센티브가 약하다=국내 CEO의 보상 수준은 일본이나 미국 등 선진국들에 비해서는 물론 동남아 경쟁국가들보다 낮다.

미국과 일본의 CEO들은 생산직 사원보다 각각 평균 34배, 11배 높은 보상을 받는 반면 국내 CEO들의 보상은 8배에 불과하다. 보상과 성과의 연계성도 부족해 미국 CEO들이 받는 보상 중 스톡옵션이 차지하는 비중은 36%에 이르지만 국내 대기업들은 아직 이 제도를 도입조차 하지 않고 있다.

◇ 선발이 폐쇄적이다=능력있는 CEO 영입보다는 내부승진이 많아 CEO는 태생적 한계를 갖는다. 개혁보다는 보신주의에 빠질 가능성이 높고 기업 체질을 획일화함으로써 환경변화에 능동적으로 대처하기가 어려워진다. 미국 기업의 CEO 영입 비율은 19.2%인 데 반해 국내 10대 그룹의 외부 영입 CEO는 6.1%에 불과하다.

◇ 전략보다는 관리에 치중한다=성장 시대의 CEO들은 비전의 제시나 사업 영역 설정, 투자 결정 등 기업의 주요 판단을 스스로 내리지 못하고 정부나 오너에게 의존해 왔다. 그 결과 전략적인 리스크를 감수할 수 있는 자세와 식견이 미흡하다.

또 의사결정시 과감한 결단보다는 적당한 타협을 선호하는 경향이 강한데, 지금의 CEO들도 이같은 태도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는 게 삼성경제연구소의 분석이다.

◇ 과거와의 단절이 필수=1997년 외환위기와 함께 찾아온 변화의 물결로 지난 수십년 동안 굳어진 경영관행과 문화는 발전의 장애물이 됐다는 분석이다.

삼성경제연구소의 한창수 수석연구원은 "관행을 점진적으로 변화시킬 여유가 없다" 며 "과거와의 단절이 절실하다" 고 강조했다. 한 연구원은 "CEO의 육성과 선발이 공식화돼야 하고 리스크를 안게 하는 대신 확실한 평가와 보상을 제시하는 문화.제도적 전환이 시급하다" 고 말했다.

이재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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