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틴틴경제] 신용불량자 왜 구제해 줬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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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3면

금융기관들이 돈을 제때 갚지 않을 확률이 높은 신용불량자에게 돈을 빌려주고 싶지 않은 것은 당연한 일입니다. 많은 돈을 들여 신용정보를 관리하는 것도 신용불량자를 가려내기 위한 것이죠.

그러나 1997년 외환위기라는 엄청난 사태를 맞아 신용불량자가 너무 늘어나는 바람에 문제가 심각해졌습니다. 수많은 회사가 망하면서 직장을 잃는 사람이 크게 늘어나 열심히 살려고 하는데도 신용불량자가 된 사람이 한둘이 아니게 된 것입니다.

지난 3월에는 은행연합회에 집계된 신용불량자만 해도 3백만명을 넘어설 정도였죠. 외환위기 이후 신용불량자가 너무 많아진 것이죠.

신용불량자는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지 못하니까 비싼 이자를 물어가면서 사채업자에게 돈을 빌리게 되고, 이중 나쁜 사채업자들은 돈을 갚지 않는다고 폭행을 하고 집을 빼앗거나 심지어 사람을 팔아넘기는 일까지 저질렀습니다.

이처럼 신용불량자 문제가 심각해졌기 때문에 정부가 돈을 갚은 사람들은 구제해 주자고 나선 것입니다. 돈을 갚지 않은 사람은 계속 신용불량자로 내버려 두더라도 돈을 갚았는 데도 신용불량 기록 보존자로 남아 있어 신용불량자와 같은 취급을 받는 사람들은 구제해 주자는 것이죠.

또 아직 돈을 갚지 못했더라도 5월말까지 갚으면 신용불량자에서 빼주기로 했습니다. 이런 조치를 일부에서는 신용사면이라고 부르는데, 신용불량 기록 삭제가 정확한 표현입니다. 정부는 2000년 1월에 처음으로 31만명의 신용불량 기록을 삭제했고, 5월 1일자로 두번째로 1백8만명의 기록 삭제를 지시했습니다.

금융기관들은 애써 모아놓은 기록을 없애면 앞으로 신용이 불량한지 좋은지를 어떻게 알 수 있겠느냐며 처음에는 반대했습니다. 그러나 정부가 강하게 요구하자 어쩔 수 없이 따르면서도 자체적으로 수집한 신용정보는 남겨놓겠다고 우기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다 보니 1백8만명 중에서 은행연합회의 불량기록에서는 삭제되었는데, 신용카드회사 같은 곳에서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정보에서는 삭제되지 않은 사람도 적지 않습니다.

정부는 신용카드회사들한테 돈을 갚으면 자체적으로 갖고 있는 신용정보에서도 지우라고 지시하고 있는데, 카드사들이 얼마나 말을 들을지는 두고 봐야겠습니다. 신용불량자 문제가 워낙 심각하다 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라고 하지만 이런 구제조치가 자주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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