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몸살 앓는 대학병원] 교수들 "차라리 개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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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의과대학의 근간을 이루는 교육.연구.진료. 그러나 의약분업 실시 이후 대학병원 의사들이 '진료 영업현장' 으로 내몰리면서 대학 본연의 기능도 흔들리고 있다.

10년째 H대 교수로 근무하는 K씨. "말이 좋아 교수지, 하루 종일 환자 진료에 시달리고 학생.수련의.전공의 교육에 보호자 교육까지 하다보면 퇴근시간이 될 때까지 연구는 고사하고 책을 볼 시간도 없다" 고 말한다.

또 다른 대학병원의 P씨. 그는 "의대 교수는 병원 수입을 올리기 위해 고용된 의사라는 생각밖에 안든다" 고 털어놓는다. 병원에선 매일 과별 진료실적을 공고하고 진료과장 회의는 수입을 독려하는 게 주된 주제라는 것.

교수의 본분인 연구도 뒷전이다. 환자 진료에 치여 좀처럼 시간을 낼 수 없다. 전공의들도 미래가 불확실하다는 생각 때문에 교수를 따르지 않는 새로운 풍속조차 생겨나고 있다. 많은 의대 교수들은 교수로서의 보람.명예.자율성이 이미 사라졌다고 말한다.

사정이 이렇다보니 '가능하면 하루라도 빨리 나가자' 는 생각이 교수사회에 팽배해 있다.

C대학병원 피부과는 올해에만 7명의 교수가 개원했을 정도. 이 중 한사람인 L씨는 "연구하고 싶은 분야가 있어 대학교수를 택했다. 하지만 피부병 환자만 몰리는 대학병원 특성상 수입을 못 올리다 보니 지난 한해 동안 진료실을 병원 후미진 곳으로 세번이나 옮겨야 했다" 고 말했다.

미래의 의사 교육도 문제다. 일반외과.소아과.산부인과 등 필수진료과 기피는 이미 하루 이틀 된 얘기가 아니지만 전통적으로 우수한 의대생들이 지원했던 내과조차 의약분업 이후 기피과로 변해가고 있다.

서울대병원 소아과 윤용수 과장은 "환자가 미어터진다는 서울대 어린이병원도 교과서적인 진료를 하다보니 지난 한해 50억원의 적자를 봤다" 며 "필수진료과의 활성화를 위해 정부의 전략적인 지원이 절실하다" 고 강조했다.

황세희 전문위원.의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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