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진혁 칼럼] 민심을 잡는 방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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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집권측에서는 요즘 민심이 떠났다고 걱정이 많은 모양인데 필자가 보기엔 민심이 권력을 떠난 게 아니라 권력이 민심을 떠났다고 하는 것이 더 정확한 표현이 아닐까 싶다. 민심이란 예나 지금이나 불변 부동(不動)이다.

경제가 잘 되고 좀더 공정.형평한 사회로 나아가고, 여야가 사이좋게 정치하는 것을 바라는 민심은 언제나 마찬가지다. 권력이 이런 민심에 부응하고 그 실현을 위해 노력한다는 믿음을 줄 수 있을 때 지지율은 올라가고 사회나 정치도 안정될 수 있다. 그 반대라면 어김없이 지지율은 떨어지고 정치.사회불안이 오게 된다.

*** 민심이반 아닌 '權力離反'

그러니까 권력이 민심 곁에 있고 민심과의 일치를 위해 애쓸 때엔 문제가 없지만 권력이 민심을 떠나거나 무시하면 문제가 심각해지는 것이다. 이렇게 볼 때 문제는 민심이반이 아니라 권력이 민심을 떠나고 민심에 등을 돌리는 '권력이반' 이다. 지금이 바로 그런 상황이 아닌가.

예를 들어 생각해 보자. 민심은 과거나 지금이나 낙하산 인사를 싫어한다. 과거엔 좋아하다가 요즘 들어 유독 싫어하는 게 아니다. 낙하산 인사를 싫어하는 민심은 불변인 것이다.

그럼에도 권력은 낙하산 인사를 감행한다. 바로 권력이 민심을 떠난 것이다. 민심이 호화골프를 싫어하는 것도 과거나 지금이나 마찬가지다. 그런 민심을 존중하고 그 민심 곁에 있고자 했던들 지난번과 같은 호화골프 파문은 없었을 것이다.

그러나 민심을 이반(離反)해 안하무인으로 고급양주.호화상품에 골프장 예의까지 무시해 가며 희희낙락했으니 파문이 일어난 것 아닌가.

이처럼 민심이 떠난 게 아니라 자기들이 민심을 떠났기 때문에 오늘의 난국이 왔다는 사실을 안다면 민심수습책은 저절로 나올 수 있다.

지금 집권측은 민심을 잡는 방법이 뭐냐고 연일 머리를 짜는 모양이지만 더 이상 고민할 필요가 없다. 자기들이 민심 쪽으로 가면 되는 것이다. 민심이 원하는 것, 기뻐하는 것, 민(民)에 득되고 편리한 것, 이런 것을 열심히 하면 되는 것이다.

다시 말해 권력이 민심과 이해(利害)와 희로애락을 같이 하려는 노력과 자세, 최소한 그런 믿음을 주면 민심은 저절로 잡을 수 있다. 생각하기에 따라선 쉬운 일이다. 민심이란 것이 저멀리 화성이나 다른 나라에 가 있는 것도 아니다. 낙하산 인사.호화골프를 하지 말라는 것처럼 누구나 쉽게 가까이 찾을 수 있는 민심도 많다. 그런 민심을 즉각 실천하면 되지 않겠는가.

문제는 알고서도 실천할 능력이나 의지가 있느냐 하는 것이다. 원래 어느 정권이든 초기에는 민심과 일치하려는 열성을 보이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초기의 열정과 동기는 약화되고 실수와 도덕적 해이가 겹치면서 차츰 민심과 멀어지는 현상을 보이게 된다.

여기에 권력자의 체면.업적 과시욕.교만이 작용하고 권력 패거리와 권력 이기주의가 형성되면 민심과는 결정적으로 멀어지고 만다. 가령 권력자의 체면이나 업적 욕심 때문에 국정실패를 실패가 아니라고 우기고, 우기다 보니 개선.시정할 기회마저 놓치게 된다.

패거리의 취직.득세를 위해 비판을 받으면서도 낙하산 인사를 중단할 수 없게 된다. 권력 자신과 패거리의 이익을 민(民)의 이익보다 우선하는 권력 이기주의 때문에 사회의 공정.형평이 쉽게 무너지고 공권력의 편파적 행사와 사용(私用)이 빈번하게 나타난다. 권력이 민심을 등지는 권력이반의 일반적 현상이다.

*** 권력이 민심쪽으로 가야

DJ 정부가 민심을 잡겠다면 이런 권력이반 현상을 과감하게 극복해야 할 것이다. 민의 이익과 편리대신 권(權)과 관(官)의 체면.오기.출세.편리에 더 끌려가지 않았는지, 패거리의 이익.세력 때문에 정치.국정의 왜곡을 부르지는 않았는지 잘 따져봐야 한다. 의약분업.공교육.낙하산.4대개혁 등도 그런 관점에서 되돌아볼 필요가 있다.

집권측이 지방선거 참패 후 모처럼 고민하는 모습을 보이다가 쑥 들어간 것은 아쉬운 일이다. 유례없는 선거 참패와 지지율 하락이라는 큰 시련을 맞았으면 그에 대응할 만한 깊은 고민과 큰 처방이 나와야 할 텐데 고작 개혁피로니 개혁지속이니 하다가 끝낸 것은 문제였다.

큰 문제가 터졌는데도 대책없이 앉아 있는 꼴이다. 결국 민심을 잡자면 권력이 민심 쪽으로 가야하고 그러자면 권력의 자기변화.자기반성.자기재정비밖에 길이 없다. 거꾸로 민(民)을 주물러 민심을 권력 쪽으로 가져가려 한다면 실패가 뻔할 것이다.

송진혁 <논설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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