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산타클로스 기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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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지구보다 수천조배 더 큰 행성의 표면을 몽땅 파헤치는 방법이 있을까.

우리 은하계의 별 1천억개를 전부 탐사하는 방법이 있을까.

답은 있다. 자동복제 기계, 즉 그 행성이나 별에 있는 물질을 이용해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기계를 만들면 된다. 복제에 1주일 걸리는 기계가 있다면 10주 후에는 1천24대, 4개월 후에는 1백여만대로 늘어난다. 이들이 굴착이나 탐사를 하게 만드는 것이다.

자동복제 기계의 개념은 헝가리의 수학자.물리학자인 요한 폰 노이만(1903~57)이 49년 처음으로 정리, 발표했다. 자동복제를 할 수 있으려면 논리적으로 ▶기계 자체▶설계도▶설계도 복사 장치▶작업 통제 장치 등의 4개 요소가 필수적이라며 복제 메커니즘을 제시한 것.

그로부터 4년 뒤 웟슨과 크리크는 생물 DNA의 이중 나선 구조를 밝혀내고, 노이만이 설명한 바로 그 방식으로 DNA 분자들이 복제함을 증명했다. 자동복제 기계의 정의는 현재 '생물' 의 정의로 자리잡았다. 지구상의 생명체들은 모두 스스로를 복제할 수 있는 생물적 기계인 셈이다.

'노이만 기계' 는 '산타클로스 기계' 로도 불린다. 첫머리에 예시한 것 같은 꿈같은 일을 이론적으로는 모두 가능케 하기 때문이다.

80년 미국 항공우주국(NASA)은 과학자들에게 우주를 가장 효율적이고 저렴하게 연구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해 보라는 과제를 주었다. 과학자들은 달을 인간이 거주할 수 있는 장소로 만든다는 목표를 설정했다.

이들은 1백t짜리 자동복제기계 한대면 주택.발전소.발전소 건설 등의 중요 과제를 완수할 수 있을 것이라고 결론지었다. 제작에 엄청난 비용이 들겠지만 단 한대만 달로 보내면 된다.

지난 9일 이탈리아의 한 연구팀은 수십억년 전의 운석 속에서 박테리아 세포가 분열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5월 11일자 15면). 지난 2월 NASA 연구팀은 화성 운석 속의 수정에서 박테리아의 흔적을 발견했다고 발표했다.

우리 은하계의 행성 1조개(추정) 중 상당수에서 생명체들이 진화했을 가능성을 생각하게 하는 대목이다. 그 중에는 지구보다 앞선 문명도 있을 것이다.

그런 외계인이 광대한 은하계를 모두 탐사하고 싶다면 당연히 노이만 기계를 만들지 않았을까.

우리가 우주에서 만나게 되는 외계지능의 첫 징후는 자동복제 기계일 가능성이 크다고 과학자들은 보고 있다.

조현욱 문화부 차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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