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기고 싶은 이야기들] 외환·외자·외곬인생 40년 (67)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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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67. 축산업계 대표와 회봉

국회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든 남는 것은 속기록이다. 실무자들이 충분히 검토해 만든 답변서를 그대로 읽었으니 나의 답변은 거의 완벽했다고 할 수 있다.

사실 구설에 오른 사람들 중엔 말 잘하는 사람이 적지 않다. 자기가 알고 있는 것을 과시하다 보면 누구든지 말 실수를 하게 돼 있다.

부총리 시절 한 번은 국회에서 쉬는 시간에 『의회답변심득집』이라는 일본에서 나온 책을 읽고 있었다. 함께 간 최수병(崔洙秉) 당시 기획관리실장(현 한국전력공사 사장)이 무슨 책이냐고 물어 보여 줬다. 그 후 그가 기자실에 들러 "부총리가 국회에서의 답변 요령을 다룬 책을 읽고 있다" 고 말했다. 이 역시 가십거리가 됐다.

다시 1988년 초 야이터 미 무역대표부(USTR) 대표를 만나러 워싱턴에 갔을 때의 일이다. 당시 장관이 해외 출장을 가면 현지에서 금일봉을 내놓는 관행이 있었다. 나에 앞서 온 장관이 3천달러를 내 놓은 적이 있었던 모양이다. 주변에서 부총리 신분에 3천달러는 내 놓아야 한다고 했지만 나는 1천달러만 꺼내 놓았다.

그러자 나를 수행한 경제기획원 직원이 액수가 너무 작다고 말했다. 많이 내놓아 봤자 선례가 돼 후임자들에게 부담만 줄 뿐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어차피 쇠고기 시장 개방 문제로 욕 먹을 각오를 하고 떠난 출장길이었다. 손이 작다는 이유로 가십거리가 될 수도 있었지만 나는 무시해 버리고 말았다.

쇠고기 수입 문제로 하도 많이 두들겨 맞았더니 언론도 나중엔 나에게 동정적이 됐다. 결국 무역마찰 문제로 욕을 먹는 편이 낫겠다던 내 생각이 들어맞은 셈이었다. 재무장관 시절 부실기업 정리를 할 때 어차피 욕을 먹게 돼 있다면 처리 내용을 발표하지 않는다는 이유로 욕을 먹는 게 낫겠다던 판단이 맞아떨어진 것과 마찬가지로.

국내 정치의 안정은 대외적인 교섭에서도 중요한 변수다. 정치가 안정돼야 대외적으로도 교섭력을 발휘할 수 있다. 88년 벽두 5, 6공 교체기에 빚어진 쇠고기 시장 개방 파문도 국회의원 선거를 앞두고 있던 국내의 정치 현실이 대외관계에 투영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점에서는 통상정책에 대한 결정권이 의회에 귀속돼 있는 미국도 예외가 아니다.

그 무렵 나는 축산업계 대표들과 만나 쇠고기 시장 개방의 불가피성에 대해 설명하고 국내 축산농가의 피해를 보상하는 문제에 관해 의견을 나눈 일이 있다. 장소는 지금은 없어진 서울 성북동의 대원각. 오찬을 겸한 간담회 자리였다. 나는 "쇠고기나 먹자" 며 이들과 함께 대원각으로 향했다.

그 자리에서 나는 "올림픽을 앞두고 미국 관광객들이 달러를 들고 들어와 자국산 고급 쇠고기를 먹겠다는데 이를 정부가 막기란 쉽지 않다" 고 말했다. 뜻밖에 이들은 개방의 불가피성에 대해 선선히 수긍했다. 그러더니 이구동성으로 보상만 잘해 달라고 말했다.

"우리도 쇠고기 수입이 불가피하다는 건 압니다. 정부에서 보상만 잘해 주십시오. "

쇠고기 수입 개방 반대 시위를 주도했던 그들도 어려운 사정을 솔직하게 털어 놓았더니 말이 통했다.

부총리 시절 나는 기자들과의 간담회 자리에서 '치어 리더' 로서의 부총리론을 편 일이 있다. 부총리는 경제팀의 수장이기도 하지만 경제장관들이 소신껏 일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 줄 필요가 있다.

그러기 위해 나는 경제장관들과 적극 협조하겠다고 말했다. 요즘은 어떤지 모르겠지만, 사람들이 공무원 앞에서 괜히 굽실거리는 것은 그가 잘나서라기보다 앉아 있는 책상을 보고 그러는 것이다. 옷 벗고 나오면 누구나 절감하는 것이지만.

정인용 전 경제부총리

정리〓이필재 이코노미스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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