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게이츠, 차세대 원전개발 팔 걷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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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마이크로소프트(MS) 창업자인 미국의 빌 게이츠가 사재를 투자해 일본의 도시바(東芝)와 차세대 원자로 공동개발에 나섰다. 이 신형 원자로는 핵연료를 교환하지 않고 최장 100년 연속 운전이 가능하도록 개발될 예정이다. 게이츠는 자신이 사실상 오너인 미국 원자력 벤처회사 ‘테라파워’가 개발 중인 원자로에 도시바의 기술을 융합하기로 했다고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이 23일 보도했다. 게이츠는 이 원자로 개발에 사재 수십억 달러를 투자할 것으로 전해졌다.

◆차세대 원전=게이츠와 도시바가 공동 개발하는 차세대 원자로는 고속증식로 ‘TWR(트래블링 웨이브 리액터)’이다. 미국 워싱턴에 본사를 둔 테라파워가 이 원자로 개발 계획을 세우고 있다. 게이츠는 이 회사의 경영에 관여하고 있다.

현행 경수로 방식 원자로는 수년 주기로 연료를 교환해야 한다. 원전의 원료인 우라늄이 불완전 연소하므로 새로운 우라늄을 계속 투입해야 하기 때문이다. 반면 게이츠와 도시바가 공동 개발에 나선 신형 원자로는 우라늄을 최대한 연소시킬 수 있다. 원자로 안에서 우라늄이 서서히 연소되면서 핵분열 반응 속도를 조절할 수 있기 때문에 제어봉이 필요 없어 안전성도 높다. 불완전 연소에 따른 핵폐기물 처리 문제도 획기적으로 해소될 수 있다.

출력 10만㎾급으로 소형화할 수 있어 설치와 비용 면에서도 실용적이다. 실용화가 진전되면 현재 주류를 이루고 있는 100만㎾급 원자로까지 생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된다. 테라파워는 핵심 기술을 도시바로부터 제공받아 2020년대에는 실용화에 나선다는 계획을 갖고 있다.

◆왜 제휴했나=게이츠는 지구온난화의 해결책으로 차세대 원자로 개발에 큰 관심을 가져왔다. 원전은 이산화탄소(CO2) 배출을 근본적으로 줄일 수 있는 친환경 전력을 생산한다.

도시바는 1만㎾급의 초소형 고속 원자로 개발을 완료해 올 가을 국제원자력기구(IAEA) 등에 인증을 신청할 예정이다. 이 원자로는 연료를 교환하지 않고 30년간 발전할 수 있는 능력을 보유하고 있다. 2014년 1호기가 완성될 예정이다. 그러나 발전량이 너무 적어 아직 상업화되기는 어려운 단계다. 당분간은 산간벽지 등 특수한 지역에 시험적으로 사용될 것으로 보인다.

테라파워가 계획 중인 고속 원자로는 실용화까지 넘어야 할 과제가 적지 않다. 100년간 원료 교체 없이 발전하려면 원자로 자체가 튼튼해야 한다. 그래서 장기간 핵반응에 견딜 수 있는 원자로 재료를 개발하는 것이 가장 큰 과제다. 실용화에는 최소 10년 이상 걸릴 것으로 예상된다.

그럼에도 게이츠가 원자력발전 사업에 본격적으로 뛰어들면서 세계 원전 건설 붐은 한층 거세질 전망이다. 미국은 32기 이상, 중국은 50기 이상, 러시아는 40기 이상, 일본과 인도는 각각 14기의 원자력발전소 신설을 추진하고 있다. 더구나 세계 2위의 부자로 평가되는 게이츠가 차세대 원자로 개발에 나서면서 이 분야 경쟁이 한층 치열해질 전망이다. 현재 미국·프랑스·러시아·중국·일본 등이 고속로 개발에 적극 나서고 있다. 현행 경수로 방식은 연료 확보에서 원전 운전, 연료의 폐기까지 거대한 인프라 산업이어서 비용이 많이 든다.

도쿄=김동호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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