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방중 취소배경] '김정남 망신' 北 개방행보 찬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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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김정일(金正日)북한 국방위원장의 급작스런 중국 방문 취소사태는 '김정남(金正男)사건' 의 수습에 부심하는 북한 내부 분위기를 반영한 것으로 볼 수 있다.

◇ 평양 덮친 김정남 충격파=중국과의 외교적 약속까지 깨야 할 만큼 이번 사건의 파장은 컸다.

베이징(北京)의 주중 북한대사관은 정문 게시판의 김정일 사진을 지난 5일 모두 새롭게 교체하는 등 준비에 몰두했다.

하지만 金위원장으로서는 후계자로 지목받는 아들이 중국으로 추방된 시점에 같은 곳을 방문하기 어려웠을 것이란 게 외교 관측통의 지적이다.

남북 정상회담과 예란 페르손 총리 초청외교로 쌓은 대외개방의 이미지도 적지 않은 타격을 입었을 것이라는 얘기다. 정부 당국자는 "김정남의 볼썽사나운 국제무대 데뷔가 아버지에게 통치부담을 안겨준 셈" 이라고 풀이했다.

◇ 왜 또 가려 했나=金위원장은 베이징.상하이(上海) 방문에 이어 이번에 선전(深□)을 찾아 연초부터 주창한 '신사고' 의 구체적 이행을 마무리하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북한경제 회복의 돌파구로 삼은 중국식 개혁.개방모델을 보다 구체화하겠다는 생각이 있었다는 것. 이런 절박한 사정이 장쩌민(江澤民)주석의 답방 같은 방문외교의 균형까지 깨며 중국을 자꾸 찾는 이유로 보인다.

외교소식통은 "지난 1월 상하이를 찾은 金위원장에게 주룽지(朱鎔基)총리가 선전 방문을 권유했으나, 金위원장은 '봄에 다시 오는 길에 들르겠다' 고 말한 적이 있다" 고 말했다.

특히 아들(김정남)을 동반하려 한 것은 자연스레 후계자 수업을 거치려 한 의도로 풀이할 수 있다.

◇ 촉각 세운 정보당국=우리 관계기관은 이달 들어 북.중 국경 단둥(丹東)지역의 북한 특별열차 통과를 주시해 왔다.

지난 3월 서울에 온 다이빙궈(戴秉國)중국 공산당 대외연락부장이 우리측에 '5월에 북한 고위 사절단이 올 예정' 이라고 귀띔하는 등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기 때문. 하지만 방문이 무산되자 북한의 개혁.개방은 물론 남북대화의 보폭까지 더욱 위축되지 않을까 우려하고 있다.

이영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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