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처 외자유치 발표 지나친 과장 많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29면

'2000년 5월 외자유치 발표(3천만달러 해외CB발행)→연기(6월)→철회(7월), 2001년 2월 외자유치 발표(3천만달러 해외BW발행)→연기(3월)→철회(4월)' .

코스닥 등록기업인 D사가 지난해와 올해 외자유치에 관해 발표한 공시내용이다. 의욕적으로 시작했던 외자유치는 한두 달이 지나며 슬그머니 '없던 일' 이 됐다.

회사측은 "시장 상황이 나빠져서 계획대로 되지 않았다" 고 해명했지만, 이를 믿고 주식을 샀던 개인투자자들은 허탈감을 감추지 못하고 있다. 증권사이트의 이 회사 게시판에는 이를 비난하는 글이 적지않게 올라와 있다.

온라인 게임업체 B사는 지난해말 총 2천만달러의 해외CB(전환사채)와 BW(신주인수권부사채)를 발행했지만 이후 이 물량을 대부분 회사자금이나 대주주의 돈으로 재매입한 것으로 최근 확인됐다. 대주주 지분만 늘렸을 뿐 외자는 거의 들어오지 않은 '무늬만 외자유치' 였던 셈이다.

벤처기업들이 잇따라 발표하는 외자유치 계획에 문제가 적지 않다. 구체적인 실행계획 없이 일단 발표부터 하고 주가를 띄운 뒤 '나몰라라' 하는 사례도 많다.

해외 제휴기업의 약속위반과 증시침체로 당초의 외자유치 계획이 무산 또는 연기되는 부득이한 경우도 있지만 당초부터 구제척인 실행계획 없이 기업가치를 올리기 위해 외자유치설을 흘리는 경우도 많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지적한다.

본지가 지난해말과 올해에 걸쳐 코스닥시장에서 외자유치를 공시한 주요 벤처기업 24개사를 조사한 결과 한글과컴퓨터.엔피아.쌈지 등 13개사의 외자유치가 취소 혹은 결렬된 것으로 나타났다.

이동통신단말기 제조업체 S사의 경우 지난 1월 30일 중화권 다국적 지주회사인 체리시와이얼리스커뮤니케이션스로부터 7백20억원(주당 1만8천원)의 외자를 유치했다고 확정 공시까지 했지만, 아직까지 돈은 한푼도 들어오지 않았다. 회사측은 "아직 진행 중" 이라고 밝히고 있지만 증권계에선 "주가가 크게 떨어져 사실상 물건너간 것 아니냐" 고 말한다.

벤처기업들의 외자유치 계획을 이용해 한몫 보려는 브로커들도 성행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한 벤처기업 사장은 "벤처기업이 해외CB발행 등 외자유치를 발표하고 나면 이 물량은 브로커의 중개로 해외인수자의 손을 거쳐 곧바로 국내 투자자에게 넘어오는 방식이 대표적" 이라고 밝혔다.

즉시 인수가 어려우면 해외자금을 고리(高利)로 잠시 빌린 뒤 외자유치 성공 소식으로 주가가 급등하면 주식매각 차익금으로 빌린 돈을 바로 돌려주는 방식도 자주 이용된다. 이 과정에서 브로커들은 발행금액의 1~3%를 수수료로 받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윤.이원호.이승녕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