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어버이 마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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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거울 속 먼 하늘 오월 푸르름/그 속으로 다가오는/어머니의 얼굴/희끗희끗 희신 머리/이마에는 주름살/어글어글 크신 눈과 짧은 인중이/정정하고 인자한 옛 음성이/밥 먹어라, 등이 춥지 않니?/차 조심해라, 너무 남의 앞장서지 말어!/에이그 쯧쯧!/몸조심 하라니까!/시장하지 않니?"

박두진 시인의 시 '거울 앞에서' 를 읽으면 어머니 모습과 음성이 떠오른다. 자나깨나 자녀 걱정인 어머니 앞에서는 나이.사회적 지위 불문하고 우리 모두 영원한 아이다.

전국의 노인 4백98명을 대상으로 한 설문조사에 따르면 어버이들이 자녀들에게 가장 하기 힘든 말이 "몸이 아프다" 이고, 그 다음이 "외롭다" 다. 또 어버이들이 바라는 것은 첫째가 '자녀들의 성공' 인 것으로 나타났다.

몸이 아프고 마음이 외로워도 말 한마디 못하고 오로지 자녀들의 앞날이 잘 되기 바라는 어버이들. 일제에 수탈당하고 동족상잔으로 초토화된 지난 세기의 이 땅에서 자녀들 잘 키우며 오늘 이만큼을 이뤄낸 우리 어버이들은 그러나 오늘이 고달프다.

보건사회연구원이 60세 이상 노인들의 생활실태를 조사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노후를 가족에 의존하겠다는 비율이 1980년 49.4%에서 95년에는 28.2%로 줄어든 반면 사회보장에 의존하겠다는 비율은 8.2%에서 29.2%로 늘었다.

그러나 99년을 기준할 때 공적 연금의 혜택을 받는 노인은 5%에 불과하다. 그래도 어버이들은 아낌없이 아래 세대에게 줄 것이다.

56년 경로효친의 전통적 미덕을 전하고자 제정된 어머니날이 73년부터 아버지까지 함께 기리자며 어버이날로 됐다. 가정에서는 어버이에게 카네이션을 달아드리고, 정부에서는 전국의 효자.효부들을 선발해 상을 주며 그 효심을 사회에 널리 퍼뜨리는 날이다.

비가 오나 눈이 오나 70여년간 하루도 빠짐 없이 부모님의 묘소를 찾아 돌보고 있는 91세의 박태영 할아버지도 이번에 효자상을 타 우리의 마음을 적신다. 어버이날인 오늘도 못찾아 뵐지라도 부모를 향한 어떤 자녀들의 마음이 그렇지 않으랴. 새끼를 돌보는 것은 살아 있는 모든 생명의 본능이다.

그러나 지금의 자신을 있게 해준 윗대를 그대로 공경하는 것은 사람만이 할 수 있는 인간의 도리다. 자녀들의 가난만 염려하고 자신의 곤궁한 신세는 한탄도 못하는 어버이들의 현실은 가정에서든 사회에서든 결코 외면돼선 안된다.

이경철 문화부장대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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