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태진 기자의 오토 살롱] 푸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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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9면

프랑스의 대표적 자동차 회사인 푸조에는 일반인들이 잘 모르는 사실 두 가지가 있다. 우선 벤츠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오래된 자동차 메이커라는 점이다. 또 연간 300만 대 이상 팔리는 자동차보다 먼저 유명해진 것이 식탁용 후추 그라인더(분쇄기·사진)라는 사실이다.

사자 모양의 엠블럼으로 유명한 푸조 브랜드의 시작은 181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장 프레드릭 및 장 피에르 푸조 형제는 자신들이 소유한 풍차를 압연공장으로 개조한 뒤 톱날이나 시계 스프링 등을 제조했다.

이후 커피 그라인더·믹서·재봉틀·세탁기 등을 만들었다. 푸조가 유명해진 것은 후추 그라인더다. 1870년대부터 제조한 후추 그라인더는 연간 500만 개 이상 팔리면서 전 세계 유명 레스토랑이나 가정의 식탁에서 널리 쓰이고 있다.

자동차에 손댄 것은 1800년대 말이다. 창업자의 손자인 아르망 푸조는 영국 유학 시절 자동차 붐을 예견한다. 귀국한 아르망 푸조는 먼저 자전거를 개발했다. 이후 집안 어른을 설득해 자동차로 확장한다.

1889년 길이 2.5m, 무게 250㎏에 앞뒤 좌석이 마주 보는 세 바퀴 자동차를 만들어 파리 세계박람회에 전시한다. 2기통, 2.3마력 엔진을 얹고 최고 시속 16㎞로 달렸지만 바퀴가 세 개라 판매는 신통치 않았다. 다음 해 네 바퀴에 다임러(메르세데스-벤츠의 전신) 엔진을 얹은 ‘타입 2’를 내놓으면서 성공의 신호탄을 쏘아 올렸다.

푸조는 1896년 정식으로 자동차회사를 설립했다. 1886년 설립된 독일 벤츠 다음이다. 1912년 세계 최초로 실린더 한 개당 네 개의 밸브와 캠 샤프트를 갖춘 현대적 엔진을 내놓았다. 31년에는 세계 최초로 앞쪽에 독립식 서스펜션을 단 ‘201’ 모델을 선보였다. 자동차 이름 가운데 숫자 ‘0’을 넣는 푸조 고유의 작명 방식이 시작된 것이다. 이후 포르셰가 이름에 ‘0’을 쓰려다가 푸조 때문에 좌절되기도 했다.

푸조는 76년 시트로앵을 합병하면서 세계적인 메이커로 발돋움했다. 지난해 현대·기아차에 이어 세계 7위권에 올랐다. 그러나 91년에는 ‘눈에 띄는 디자인 이외에는 볼 게 없다’는 혹평 속에 미국 시장에서 철수하는 아픔도 겪었다.

푸조는 악어·개구리의 커다란 입을 연상시키는 라디에이터 그릴 등 프랑스만의 유머스럽고 개성 있는 디자인에 주력했다. 푸조는 현존하는 세계 자동차 메이커 가운데 가장 오랫동안 하나의 로고를 고집해 왔다. 창업 일가가 100년 넘게 경영에 참여해 왔다는 점에서 포드·도요타와 비견된다.

김태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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