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식품부 ‘망하는 길’ 헤아려 살길을 찾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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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부부처가 망한다는 말을 입에 올리는 게 좀 지나쳐 보이지만 역발상을 한번 해보자는 자리였습니다.”

경기도 수원의 농업연수원에서 무박2일의 농림수산식품부 워크숍을 마치고 22일 오후 청사로 돌아온 장태평 장관은 강행군을 소화하고도 별로 피곤한 기색이 없었다. 오히려 더 구체적이고 매운 비판이 있었으면 좋았겠다는 아쉬움을 내비쳤다.

이번 워크숍은 얼마 전 뼈대가 나온 ‘농업비전 2020’ 추진을 앞두고 마련된 자리였다. 농식품부 본부 공무원의 35%에 이르는 200여 명이 직급별로 빠짐없이 참석했다.

토론 주제는 ‘농식품부 망하는 길’과 ‘농식품부에 불만 있습니다’로 정해졌다.

이에 맞춰 혹독한 내외부의 비판이 쏟아졌다. 그만큼 농정 분야에 고질적인 문제가 많고, 농식품부 공무원과 농업 종사자들 모두 잘 알고 있다는 얘기다.

농식품부가 가장 빨리 망하는 길로 지목된 방법으론 ‘시혜성 퍼주기 정책’을 계속하는 것이 꼽혔다.

한 직원은 “한번 보조금이 생기면 없어지지 않고, 끊어야 한다는 걸 모두 알지만 매번 정치적 목소리에 밀려 온 게 현실”이라며 “이게 지속되면 존재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다”고 지적했다.

현장과 괴리된 탁상행정, 변화를 거부하는 ‘철밥통’ 문화, 외부와 소통이 없는 ‘끼리끼리’ 풍토, 신성장 동력을 찾지 못하는 장기 비전의 부재 등도 거침없이 터져나왔다.

외부 인사들의 비판도 신랄했다. 물고기 생태체험마을을 운영하는 유병덕(전북 완주)씨는 “신지식인으로 선정된 뒤 물고기 신품종을 개발했더니 해외 바이어 문의는 폭주하는데 정작 우리 국민은 아무도 관심이 없다”며 행사만 치르고 관리를 하지 않는 농정을 질타했다. 일부에서는 “담당자 얼굴 한번 본 적이 없다”는 불만이 나오기도 했다.

불만을 듣고, 자아비판까지 한 뒤 대안으로 나온 아이디어도 다양했다.

한 사무관은 “챙겨야 할 일은 계속 늘어나고, 실무자들은 현장과 교감할 틈이 없으니 창조적이고 새로운 일을 생각해낼 시간이 사라지는 악순환이 계속되는 것”이라며 “현재 업무의 30%를 버리자”고 제안했다. 보조금 일몰제를 도입하자는 의견도 많았다.

워크숍 준비를 담당한 조재호 농업정책과장은 “이번 행사를 통해 농정의 만성적인 문제점을 공유한 만큼 실무 부서별로 해결책을 찾아 하반기에는 희망을 찾는 토론회를 개최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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