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버이날 아들 생긴 나홀로 할머니 화제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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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6.25 때 가족과 헤어져 평생을 혼자 살아온 할머니가 어버이날(8일)을 앞두고 아들을 갖게 됐다.

5일 저녁 서울 구로구 독산2동의 셋방.

월 26만원의 정부 보조로 어렵게 살아가는 생활보호 대상자 김춘자(金春子.79)씨에게 서울 남부경찰서 방범과장 윤덕모(尹德模.50)경정이 큰절을 올렸다.

고향인 강원도의 휴전선 이북 마을(이천)을 떠나 서울에 돈벌이 나왔다가 전쟁이 터지면서 50년 세월을 홀몸으로 지낸 金할머니다. 그는 지난 2일 남부경찰서 민원실을 찾아 꼬깃꼬깃한 현금 50만원과 금가락지 두개가 숨겨진 비누.치약 세트를 남겨두곤 도망치듯 돌아갔다.

최근 남부서 민원실의 도움으로 전쟁통에 소식이 끊긴 언니의 네 자녀 중 박승배(78.경기 평택시)씨를 찾게된 데 대한 고마움을 표한 것. 결코 많지 않은 돈이지만 그에겐 식당일.식모일.허드렛일을 하면서 한푼두푼 모은 '전 재산' 이다.

남부서 경찰관들은 곧바로 할머니의 집을 찾아 돈과 반지를 돌려주려 했다. 그러나 할머니는 "고생하는 경찰관들이 음료수라도 한병씩 사먹고 힘을 내라" 며 막무가내로 거절했다.

결국 이 돈은 남부서 관내 소녀 가장인 김나영(13.관악구 신림4동)양에게 장학금으로 전달됐다.

尹경정은 이날 호박말랭이와 오징어조림 등 밑반찬이 가득 든 쇼핑백을 들고 金할머니를 찾았다. 尹경정은 20대 때인 1969년 월남전 참전 중 어머니를 잃었다.

尹경정은 金할머니의 손을 잡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대신해 어머니로 삼게 해달라" 고 했다. 金할머니도 "50년을 외롭게 살아왔는데 이제 아들이 생겼다" 며 눈시울을 붉혔다.

尹경정은 조만간 틈을 내 金할머니를 경기도 과천의 집으로 모셔 부인(49).세 자녀와 함께 오붓한 시간을 가질 생각이다.

김영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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