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평화헌법 벼랑에 몰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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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일본 평화헌법이 벼랑에 몰려 있다.

일본 내에 보수.우익 분위기가 급속히 확산되고 있는 가운데 신임 총리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가 총리로서는 처음 헌법개정 문제를 본격 거론하자 보수우익 세력이 개헌 목소리를 한껏 높이고 있고, 자민당 등 집권여당의 개헌 발걸음도 빨라지고 있다.

이에 따라 제54회 헌법기념일을 맞은 3일에는 언론.정치권.시민단체들이 일제히 헌법개정 공방을 벌이거나 집회를 개최하는 등 헌법개정 논쟁이 전례없이 뜨겁게 일고 있다.

헌법개정의 핵심은 전쟁포기와 무력행사 금지를 규정한 제9조의 폐기와 집단적 자위권 실시 등이어서 한국.중국 등 주변국과의 외교 갈등으로도 비화할 전망이다.

◇ 정치권 움직임=고이즈미 총리가 헌법개헌 논의를 주도하고 있는 데다 야마사키 다쿠(山崎拓)간사장이 '헌법 제9조2항 삭제.군대 보유 명시' 등을 골자로 한 헌법 개정시안을 만든 자민당은 헌법개정 의욕에 부풀어 있다.

자민당은 3일 성명에서 "새로운 시대에 걸맞은 헌법에 대해 국회 등에서 국민과 진지한 논의를 벌이기를 희망한다" 고 밝혔다. 연립여당인 공명당도 "국민과 개방된 헌법논의를 해야 한다" 고 주장했고, 보수당도 "이른 시일 내에 국가의 근간이 될 새로운 헌법을 제정해야 한다" 고 촉구했다.

고이즈미가 오는 8일 국가목표.통치형태 등 장기전략 수립을 위해 자민당에 설치하는 국가전략본부의 핵심활동 역시 헌법개정이며, 자민당은 개정 시안을 만든 후 국민운동 등을 통해 국민을 설득한다는 전략을 세운 것으로 전해졌다.

지난해 1월 헌법개정 연구를 위해 중.참의원에 설치된 헌법조사회도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다. 중의원은 지난해 9월 독일.스위스.프랑스 등에 조사단을 파견한데 이어 지난달부터는 센다이(仙臺)시를 시작으로 지방공청회를 열고 있다. 이에 대해 야당인 공산당.사민당 등은 헌법개정에 반대하고 있다. 아사히(朝日)신문은 "헌법개정 문제는 7월 참의원 선거에서 주요 이슈로 등장하고 정계개편으로 연결될 수 있다" 고 밝혔다.

◇ 언론단체 움직임=일본 주요 언론들은 3일 일제히 사설을 싣고 헌법개정에 대한 입장을 밝혔다. 아사히신문과 마이니치(每日)신문은 신중론을, 요미우리(讀賣).산케이(産經)신문은 개헌론을 적극 주장했다.

이날 도쿄에서는 기독교 단체 등 6개 시민단체가 도이(土井)다카코 사민당 당수.시이 가즈오(志位和夫)공산당 위원장 등이 참석한 가운데 개헌반대 집회를 열었다. 반면 자주헌법제정 국민회의와 일본회의는 개헌 집회를 가졌다.

도쿄=오대영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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