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실금융처리 문제점은 최소비용원칙의 변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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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4면

"바람직한 일은 아니지만 불가피했다. "

수협 신용부문과 현대.삼신.한일 등 3개 생보사에 최소비용 원칙을 제대로 적용하지 않아 7천억원의 공적자금을 더 쓰게 된 데 대해 예금보험공사 관계자는 이렇게 해명했다. 시장에 충격을 줄 수 있어 돈이 적게 드는 청산 방식을 선택하지 못했다는 것이다. 그러나 수협 등에 대한 의결 과정에서 시장 충격이란 경제적 요인과 함께 어려운 지역경제 상황 등도 고려됐다는 후문이다.

◇ 변질된 원칙=정부는 공적자금 백서에서 궁극적인 비용 즉, 공적자금 소요액과 향후 회수예상액의 차이인 공적자금 비용을 최소화하는 방식을 따져 청산.파산, 계약이전(P&A), 출자지원을 통한 회생 등을 선택한다고 밝혔다.

그러나 이같은 최소비용 원칙이 제대로 지켜지지 않는다는 지적이 나오자 지난해 12월 국회에서 여.야 합의로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을 제정했다. 공적자금 투입의 당사자인 정부.예금보험공사.자산관리공사는 최소비용 원칙에 따르도록 법에 규정한 것.

그러나 이는 구체적인 내용을 담은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변질됐다. 금융기관의 청산 등이 금융제도의 안정성을 크게 해칠 우려가 있다고 공적자금관리위가 인정하면 국민경제적 손실도 감안할 수 있도록 했다.

◇ 문제점=참여연대 하승수 변호사는 "국회에서 만든 공적자금관리특별법의 본질적인 내용이 행정부가 시행령을 만드는 과정에서 훼손됐다" 고 지적했다. 河변호사는 "최소비용 원칙을 국민경제적 손실까지 감안하는 것으로 굳이 정해야 했다면 시행령이 아닌 법률에 넣어야 옳다" 고 주장했다.

결국 공적자금관리위가 인정만 하면 정책당국의 재량이 폭넓게 인정될 수 있다. 국민경제적 손실이란 얼마나 되는지 계량화하기 어려우며 이해집단의 영향력에 따라 좌우될 수 있는 잣대다.

◇ 미국에선=미국은 최소비용 원칙을 연방예금보험공사(FDIC)의 비용 최소화에 초점을 맞췄다. 미국도 최소비용 원칙을 고수하다가 시장이 깨질 우려가 크다고 판단될 경우 예외를 인정하지만 엄격한 절차를 거친다. FDIC와 연방준비은행이사회(FRB)가 각각 3분의2 이상 특별결의를 통해 재무부장관에 최소비용 원칙의 예외 인정이 필요하다고 건의하면 장관이 판단하고 대통령에 보고한다.

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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